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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센척하는 겁쟁이 Jun 16. 2022

일진 만드는 법

평범한 아이를 일진을 만들어 주고 싶다면

매년 초등학생들을 데리고 학급 운영을 하다 보면 항상 목소리 크고 자기 주장 강한 녀석들이 보인다. 저학년때부터 고학년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이 타고난 고유의 성품은 성장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 것 같다. 소심한 아이는 커서도 소심하고 인기 많은 아이는 어느 그룹에 속해도 신기하리 만치 인기를 끈다. 


지금 우리 반에도 인기쟁이 친구들이 몇 명 있다. 특출나게 외모가 뛰어난 것이 아님에도 타고난 언변, 유쾌 발랄함, 센스 같은 것들을 지니고 있어서인 듯 하다. 이런건 뭐, 따라 하고 싶어도 따라할 수 없고 노력해서 될 부분도 아니라 나같은 아싸 선생님과 아싸 친구들에겐 부러움의 대상일 뿐이다. 


이런 인기쟁이 친구들은 언제나 다른 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이기 때문에 인기쟁이 친구가 하는 것을 다른 아이들은 따라 하고 싶어 하고 그 무리에 속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인기쟁이 친구들이 학급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호응을 해 주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좋은 쪽으로 말이다. 

하지만 요즘 우리반의 인기쟁이들은 다른 노선을 택한 듯 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역할극을 하려고 대본까지 다 준비해 놓았는데 인기쟁이 친구들이 큰 소리로 하기 싫댄다. 처음에 인기쟁이 친구 1~2명이 하기 싫다고 하자, 곧이어 인기쟁이의 무리 친구들, 그리고 그를 선망하는 아이들이 점차 역할극 하지 말자는 분위기로 이끌어가 버린다. 결국 몇 명의 아이들 때문에 역할극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분위기까지 완전 망쳐 놓았다. 


또 체육 시간의 일이다. 발야구를 하기 위해 팀을 나누는데 인기쟁이들이 서로 다른 팀으로 나뉘었다. 역시나 인기쟁이들이 반기를 들고 나선다. 팀을 다시 뽑아야 한다고. 팀을 계속 다시 뽑다간 체육시간이 다 날아가 버릴 참이다. 뒷골이 뻐근해져 오지만 가벼이 묵살하고 그대로 강당으로 향했다. 


오늘은 외부 강사님이 오시는 날이다. 수업 시작하기에 앞서 아이들에게 "강사님 수업 잘 들으면 스티커 준다. 하지만 예의없이 행동하거나 수업방해 하면 정신교육 들어간다"하며 으름장을 놓는데, 한 인기쟁이 녀석이 웃으며 말한다. "와~ 정신교육 재밌겠다. 그럼 수업 안하겠네? 저 할래요." 그러자 친한 인기쟁이들이 덩달아 손을 든다.  "저도 할래요" "저두요" 

외부 강사님도 이 녀석들의 당돌함에 놀랐는지 "너희들은 선생님과 편한 사이로구나" 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게 칭찬이 아니란 걸 알기에 얼굴이 화끈거리는데 이 녀석들은 끝까지 웃으며 나와 농담 따먹기를 하려고 한다.  

 

그래, 이제 교육을 할 때가 되었구나. 참 교육.

코로나 시대의 아이들이라 많은 것이 부족한데 그 중에서도 사회성과 예의를 많이 못 배웠다.

그래, 오늘은 그걸 배우는 날이다. 


오늘의 잔소리 강좌 주제는 <일진을 만드는 법>이었다. 

"얘들아~ 우리 반에 일진 있니?"


"아니오"


"맞아, 우리 반에 일진은 없지. 근데 평범한 아이를 일진으로 만드는 법 가르쳐 줄까?"


"???" 아이들의 표정은 의아했다. 일진을 왜, 어떻게 만든다는 걸까?


"일진 만드는 법은 아주 간단해. 일단 우리 반에서 가장 목소리가 크고 선생님한테 말대꾸를 잘 하고 수업 시간에 방해를 많이 하는 아이를 찾아. 그리고 그 아이가 나쁜 행동을 할 때 같이 옆에서 편들어 주면 돼. 그 애가 수업 시간에 떠들면 같이 웃어주고, 대꾸해 줘. 그 애가 선생님한테 대들 때는 같이 대들면 되고, 그 애가 하자는 대로 하고, 하지 말자고 하면 같이 하지마."


"근데 모든 아이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돼. 서너명만 그렇게 같이 편이 되어 나쁜 행동을 따라해 주면 돼. 그럼 그 친구는 금방 일진이 될 수 있어. 그리고 그 학급은 곧 일진 무리가 지배하는 학급이 될거야."


"어때 좋을거 같아?"


아이들의 표정이 놀라서 일그러진다. "아니오. 싫어요."


"일진은 아무리 나쁘고 힘센 아이가 와도 혼자서는 절대 못해. 일진 혼자 다니는 거 봤어?"


"아니오, 맨날 그런 형, 언니들은 무리 지어 있어요."


"맞아, 일진은 항상 무리지어 다녀, 혼자 있으면 나쁜 짓 할 용기도 힘도 없거든. 혼자서는 일진이 될 수 없어.그러니까 일진을 만들고 안만들고는 누가 결정하는거지?"


"우리요."


"맞아. 너희가 그렇게 만들 수 있는거야. 반대로 그럼 일진을 안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수업 방해하는 아이한테 반응해 주지 않고, 선생님한테 대드는 아이 편들지 않아야 돼요."


"그래, 너희는 그런 아이 편이 되어 나쁜 행동에 동참하지 않고 선생님 편이 되어 주고 다른 친구를 보호해주면 되는거야. 오히려 그런 아이가 있다면 너희들이 그런 행동이 나쁘다고 말해주고 말려야 해. 그러면 그 아이는 일진이 되고 싶어도 못돼. 너희들이 무서워서."




다음 날.

햇빛이 쨍쨍한데 체육 선생님께서 운동장 수업을 하신단다. 평소 같았으면 덥다고 투덜투덜 선생님한테 짜증을 부릴 아이들인데 오늘은 꽤 묵묵하게 참고 달리기 수업을 받는다. 곧이어 팀을 짜고 이어 달리기 시합을 하는데 바통을 놓친 친구를 향해서 몇몇 아이들이 또 소리를 지르고 너땜에 졌다며 화를 낸다. 

그때, 바른 선택을 하기로 한 멋진 친구들이 다같이 소리 높여 외친다 

"비난하지마! 비난하지마!"


역시 멋진 나의 꼬마 천사들. 이 멋진 꼬마 천사들 덕분에 운동장에 평화는 다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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