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9년 만에 처음으로 시댁을 가지 않았다.
마침 올해 고3인 딸의 수시 원서 접수일이 코 앞이어서 자소서 쓰기를 도와준다는 핑계가 아주 적절하게 먹힐 수 있었다. 고3인 딸과 단 둘이 4일간의 추석 연휴를 보내게 된 것이다.
이쯤에서 소리 없는 야호를 질러본다(야호!)
요즘 같으면 애(?)라고 불렸을 24살에 결혼을 하고 세상 물정 모른 채 시집살이를 했었다. 큰 형님이 하시면 그렇게 하는가 보다 하고 따라 했고, 다른 여자들은 다 그렇게 한다는 남편의 말을 들으면 원래 그런 건가 보다 하며 살았다.
조금씩 철이 들고 세상 물정을 알아가는 나이가 되니 이제 불합리한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에게 일깨움을 주었던 사건 중 하나를 말하자면, 시댁 식구들 모두 시어머니의 친정(남편의 외갓집)에 갔던 일이었다. 나를 포함한 며느리들이 종종거리며 음식 준비를 하는 사이, 대장격인 시어머니와 휘하 남자들은 거실 한가운데를 떡하니 차지하고 왁자지껄 담소를 나누고, 며느리들은 부엌 귀퉁이에서 아이들을 끼고 옹송거리고 있었다. 거실 그분들 앞에는 정갈하게 깎은 과일과 다과가 놓이고 부엌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며느리와 아이들은 대접하고 남은 다과 부스러기와 모난 과일들을 집어 먹고 있었다.
그때, 딸아이가 "엄마, 엄마는 왜 저기(거실) 있지 않고 여기 좁은데 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딸에게 못 볼 꼴을 보여주고 있구나란 생각이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내 딸도 여자고, 앞으로 결혼도 하게 될 텐데 이 모습 또한 당연한 여자의 역할로 받아들일까 봐 두려웠다. 엄연히 나는 그들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손님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게 이곳에서 나는 부엌데기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단 말인가.
그 이후로 나는 그곳에 가지 않기로 남편에게 선언했다.
결혼 19년을 돌아보면 해외에 체류했던 기간을 빼면 즐거웠던 명절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새벽부터 살인적인 교통체증을 뚫고 시댁에 가도 가자마자 내가 밥을 안쳐서 점심을 해 먹어야 했다. 2박 3일 내내 음식냄새에 갇힌 채 돌밥돌밥 하면서 15인 분의 밥과 설거지를 해야 했다. 물론 혼자서만 한 것도 아니고 혼자서 해낼 수도 없는 노동이지만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왠지 서러운 마음이 울컥 들어 말없이 창밖만 내다보곤 했다.
유독 올해 추석의 하늘이 이렇게 맑고 상쾌한 것은 음식 냄새가 진동하지 않아서일까? 아님 남들이 도리를 챙기느라 분주할 때 혼자 쉴 수 있는 여유로움 때문일까?
어찌 됐건, 지금 나는 인생 최고의 추석을 보내고 있다. 사실 특별할 것도 없는 카페 가기, 책 읽기, 낮잠 자기가 언제부터 이렇게 달콤했었나. 아까운 연휴가 다 가기 전에 소소한 혼자만의 놀이를 얼른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