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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센척하는 겁쟁이 Dec 19. 2023

아이들의 노여움이란

눈 내리는 날

 밖에 눈이 내린다. 내리는 눈이 에 닿기 무섭게 녹아서 쌓일 틈이 없다.



 열살 남짓의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가볍게 흩날리는 눈발 같다. 이리 저리 무질서하지만 그래도 뜯어 보면 예쁜 구석들이 하나씩은 있다. 어떤 말썽쟁이라도 말이다.


 아이들의 감정은 파도 같기도 하고 흩날리는 눈발 같기도 하다. 감정의 기복이 어찌나 큰지 작은 일에도 크게 행복하고 사소한 다툼에도 크게 노여워 주먹을 휘두른다.


 이렇게 눈이 오는 날 똥강아지 마냥 아이들은 운동장에 나가 뛰어 논다. 한 달 전에 크게 싸워서 앞으론 서로 말도 걸지 않겠다고 한 녀석 둘이 같이 뛰어 논다. 넷이 놀다 한 명이 외톨이가 되어 외톨이의 엄마가 분노를 쏟아냈던, 그 외톨이도 다시 나머지 세 명과 뛰어 놀고 있다. 아마도 그 엄마는 아직도 세 아이에 대한 분을 품고 있을텐데 외톨이는 더 이상 외톨이가 아니게 되어 버렸다.



 아이들의 노여움은 봄에 내린 눈처럼 땋에 닿기 무섭게 녹아버린다. 어른의 노여움은 한 겨울에 내린 폭설처럼 두텁게 쌓이고 때로는 꽁꽁 얼어 버려 봄이 오길 기다려야 한다.


 나는 이미 아이들의 넓은 아량으로 여러 번 용서 받았다.

 첫번째는 나의 자녀들에게서다. 미숙하고 철없는 부모가 혼내고 때리고 때론 미워했던 것을 아이들은 진작에용서해 주었다. 용서를 넘어서 그 이상으로 부모를 사랑해 주는 그 넓은 아량은 내가 차마 헤아릴 수 없는 넓이와 깊이다.  

 둘째는 나의 학생들에게서다. 신규 교사 시절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어설픔과 속 좁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했던 것을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그럼에도 나를 좋은 선생님으로 기억해 주는 아이들이 있어서 참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나는 온전히 마음을 주지 않았음에도 온 마음을 다해 나를 사랑해 주었던 아이들을 기억한다.



아이들을 20여년간 관찰해 보니 그들은 언제나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새로운 친구를 만나도, 낯선 선생님을 만나도 그들은 금세 사랑에 빠져 버린다. 뜨겁게 싸워도 열정적으로 좋아하고, 나쁜 기억보다 좋은 기억을 오래 남긴다. 잦은 실수들을 쉬이 잊어 버리고 쿨하게 용서해 준다. 누구에게나 편견이 없고 호기심으로 가득한 마음이 늘 열려 있다.



그래서 아이들의 노여움은 봄날에 내리는 눈과 같다. 지지고 볶고 울며 불며 하루를 보내고도 다시 손 잡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이유는 노여움도 단숨에 녹혀 버릴 그들의 충만한 사랑 덕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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