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센척하는 겁쟁이 Jan 17. 2024

환갑이 넘은 삼촌과 싸웠다(2)

대학입시 때도 내 수능성적보다 한참 낮은 대학을 추천해 주는가 하면, 한참 예쁜 이십대 초반의 나에게 나이는 엄청 많지만 부자인 남자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더이상 의심할 바가 없었다.  


삼촌의 평가절하와 멸시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스로 가치있는 사람임을 증명해 냈다. 사교육 없이도 내 노력만으로 교대에 입학했고 졸업 직후 임용에도 성공했다. 그리고 가난한 대학원생이었지만 성품이 바르고 나를 한결같이 사랑해 주는 남자와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렸다. 


가난한 대학원생이었던 남편과 2~30대를 함께 동고동락 하며 남편의 공부 뒷바라지를 했다. 그를 따라 여러 직장, 여러 지역을 떠 돌았지만 마침내 그는 모 처의 대학의 교수가 되어 40대가 되어서야 빛을 보기 시작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낡은 다세대 주택 월세방에서부터 우리 부부가 일궈 온 길이었다. 


그런데 그 때쯤이었다. 삼촌에게 연락이 오기 시작한 것은.

삼촌과는 결혼 이후로 경조사를 빼고는 개인적으로 만나거나 연락한 적이 없었다. 삼촌도 나에게 관심이나 애정을 가진 적이 없고 나도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과거의 감정이 좋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삼촌은 다른 친지들을 통해서 나의 근황을 알게 되었고 동생을 통해 만나자는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그저 삼촌으로서 밥이나 사 주고 싶다고. 


마음 한 구석에 찜찜함이 있었지만 어른이 먼저 손 내미는데 거절할 명분도 없고 지난 감정도 많이 옅어진 상태라 삼촌을 만나게 되었다. 삼촌은 먼 곳에서 굳이 내가 사는 서울까지 와서 아이들 용돈도 챙겨 주시고 비싼 식사도 사주셨다. 

  '삼촌을 내가 어쩌면 오해하고 있는지도 몰라. 내가 기억하는 삼촌과 지금의 삼촌은 다른 사람일 수도 있겠다.' 나는 삼촌에 대한 믿음은 없었지만 기대 한 조각은 품게 되었다.


하지만 두번째 만남 이후부터 삼촌은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종종 먼저 연락해 주길 바랬고 자기 자녀들의 출산이나 행사도 챙겨주길 바랬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소소한 부탁들이라 그 정도는 해 드릴 수 있었다. 그러자 한 발 더 성큼 들어오기 시작했다.


삼촌은 입시 컨설팅 학원을 작게 운영 중이었는데 어느날 남편에게 직접 연락을 하신 것이다. 남편에게 전해 들은 내용은 삼촌이 남편 대학 실험실에서 입시생들 스펙을 만들 만한 활동이나 실험을 하게 해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논문에 본인 학생들도 참여 시켜 줄 수 있는지, 학생들 상대로 강연, 견학 등을 부탁했다고 한다. 남편은 갑작스런 부탁에 많이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입시와 직접적인 관련 있는 교수가 사설 컨설팅 업체와 커넥션이 있어 보이는 것은 청렴에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사안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삼촌이 왜 근래에 자꾸 연락을 하고 밥을 사주겠다고 했는지. 삼촌은 남편의 이름과 대학을 본인 업체 홍보 자료로 쓸 심산이었던 것이다. 마침 학기초라 새로운 학생들을 모집하기에 딱 적당한 타이밍이었다. 



삼촌은 원래 인색하고 계산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우리에게 세뱃돈 주는 것도 아까워서 줬다 뺏었다 하기도 여러번이었다. 소고기라도 사 오는 날에는 이게 얼마나 비싼 건지, 너희는 이런거 못 먹어 봤을거라며 꼭 생색을 내야만 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고작 밥 두 번 같이 먹었다고 삼촌이 이렇게 훅 들어올 줄이야. 남편에게 너무 미안하고 남편이 거절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울 것 같아서 내가 나서기로 했다. 


내 남편은 내가 지킨다!



작가의 이전글 환갑이 넘은 삼촌과 싸웠다(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