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난 너를 믿기로 했다.
첫 날부터 비범한 기운을 풍기던 석대.
아직 분위기를 무섭게 잡고 있는 3월 학기 초임에도 그 녀석은 별로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석대는 주의집중력이 매우 약하다. ADHD일 것이라고 모든 학년의 담임선생님들이 의심했었고 검사를 권유했었지만 석대 부모님의 의지가 뒷받침 되지 않으니 석대는 야생마 마냥 그렇게 마음대로 살아왔고 5학년이 된 지금은 학업의 벽에도 부딪혀 생활습관과 학습이 모두 엉망이 된 상태가 되었다.
게다가 4학년 때 코로나로 등교일수가 적었으니 마땅히 배웠어야 할 것도 못배우고 관리 감독이 없는 집에서 게임을 새벽까지 주구장창하니 안좋은 생활 습관도 굳어버리게 되었던 것이다.
5학년이 된 지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지금에 와서 과연 고쳐질 가능성이 있는지 의심되는 아이가 내게로 온 것이다. 커다란 숙제를 한아름 받은 기분이었다.
3월 어느 날. 여느 때처럼 급식을 먹으러 아이들과 급식실에 갔다.
아이들이 먼저 배식을 받도록 하고 나는 맨 마지막에 급식을 담아 빈 자리를 찾고 있었다. 마침 석대가 자리에 앉은지 5분도 안되어 다 먹었다고 일어서길래 나는 석대의 자리에 앉으려 했다.
그.런.데.
석대가 앉았던 자리 바로 밑에는 음식이 그릇째 부은 것 처럼 한 무더기가 버려져 있었다. 앉은지 5분도 안되어 나간 석대 자리인지라 석대가 안 먹고 버렸구나 하는 의심이 강하게 들었다. 나가려는 석대를 불러 세웠다. 쏟아져 있는 음식을 손으로 가리켰더니 갑자기 성난 황소처럼 석대가 눈을 부릅뜨고 "아니, 내가 안그랬어요!! 어우 C!!" 하면서 소리를 치는게 아닌가. 억울하다는 듯이 가슴을 치고 영양사 선생님한테 물어보라며 되려 큰 소리를 쳤다.
석대가 폭주하는 순간 나도 심장이 얼어붙고 마음이 쎄해지기 시작했다. 영양사 선생님과 급식실 청소하시는 분까지 모셔 물었다. 이게 원래 있었던 건지, 청소를 하셨는데 새로 생긴 건지. 두 분다 확인할 길이 없다고 하셨다.
석대가 억울하다며, 자기 아니라며 하도 방방 뛰는 바람에 급식실에서 밥을 먹던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우리에게 쏠렸다.
나는 석대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고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석대야. 내가 오해해서 미안해. 내가 오해해서 억울했지? 미안하다. 나는 니가 그러지 않았다고 믿을거야. 아니, 믿어. 미안해."라고 진심으로 얘기해 주었다. 나의 마음에 의심이 99%여도 그 순간만큼은 그 아이를 믿어줘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을 듣자 성난 황소같이 날뛰던 아이의 눈빛이 풀어지기 시작했다. 석대의 눈빛을 보며 나는 석대 마음에 한발짝 다가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설사 석대가 거짓말을 한 것이었더라도 앞으로 열에 아홉쯤은 속아주기로 마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