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J 작가K(11회)
초가을 마포역 앞
포장마차의 오줌통에다 동시에 오줌을 갈기면서도
각자 서 있는 방향에 전혀 신경쓰지 않아도 될 만큼
우리는 취했다.
숟가락 위에서 자꾸만 미끄러지는 오뎅 한 장에
집중하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밤.
이 정도면 대략 10분 안에는 일어서야 마땅했다.
상황이 대략 이런데도
바지춤을 정리하고
다시 앉은 J는 또다른 주제를 꺼냈다.
(J는 취할수록 더 논리적으로 되어가는 신비한 능력을 가졌다.)
이 상태의 나로서
혼자 J를 상대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남은 힘을 모두 짜내
J가 꺼낸 주제를 이어
진심을 다해보려 했다.
내가 물었다.
“그런 말을 하면 결혼한 친구들은 대체로 어떤 반응이야?”
“요샌 그러지 않는데, 한동안 ‘너도 결혼해봐라’든가
‘너도 자식 낳아봐라’든가 하는 말을 많이 들었지.”
“싸웠겠는데?”
“많이 싸웠지. 술이 취한 상태였을 땐 거칠었고.”
나는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J와 눈을 맞추지 않은 채로 말했다.
“외로웠겠군.”
“외로웠다기보다... 적어도 나한텐 확신이 있으니까.”
“형 생각이 맞다는 확신?”
“그렇다고 볼 수 있지.”
“확신이 있다고 외롭지 않은가?”
J는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외롭지... 그래도 외롭지...”
“그냥 있잖아... 너희들은 그렇게들 살아라, 하고 눈감으면 안돼?
아님, 너희들은 그렇구나, 하고 인정해주든지.”
“넌 지금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냐?”
“아니, 원만한 관계를 위해서 말야. 형도 덜 외롭고.”
“네가 하고 있는 그런 말이 날 더 외롭게 하는 거야.”
순간 J의 표정에서 나는 경멸을 읽는다.
온몸이 찌릿했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어디쯤에서 맥락을 잃어버린 건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J는 있는 힘껏 머리를 뒤로 젖혀 마지막 술잔을 비웠다.
그러고는 일어섰다.
균형감각이 엉망이었다.
“가자. 이제 가야겠다.”
큰길에 서있던 택시를 향해 J는 손을 흔들었다.
마치 기다리고 있기라도 했던 듯 택시가 J 앞에 와 섰다.
‘아...왜 갑자기 지랄인 걸까... 왜 이따금 사람을 한없이 불편하게 만드나.’
J는 나와 눈을 맞추지도 않고 인사했다.
택시가 급발진을 하듯 떠나고
나는 남아 비틀거렸다.
원만한 관계가 주는 안정감에 대해 말한 것이었는데.
J를 위한 말이었는데...
아마 이제 한동안은 내가 먼저 연락하기가
어려울 것이었다.
J가 떠나기 전 마지막 주제는
대체 왜 아이들이 술담배를 하면 안되냐는 것이었다.
J는 가끔 자녀양육에 대해 받아들이기 힘든 말을 해 나를 놀라게 한다.
“아이들이 왜 술담배를 하면 안 되는지,
왜 섹스를 하면 안 되는 건지
단 한번도 제대로 된 이유를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그야 국민 건강을 위해서지.
애들은 간이랑 폐가 아직 다 자라지 않았다잖아.”
“그럼 다 자란 어른이 술담배를 하는 건 권장되는 일이고?”
“아니 그럼, 형은 형의 자식이 10대에 술담배를 하면 그걸 가만 놔둘 거야?”
“안 될 이유가 없지.”
“형네 딸이 임신을 해도? 그래도 아무렇지도 않을 거 같애?”
“그런 얘기가 아니야. 이유없는 금지에 대해 말하는 거야.
술담배든 섹스든, 아이들과 이야기를 해봐야지.
어른들은 버젓이 즐기고 있는 것에 대해
아무런 근거없이 금지할 수는 없다는 거야.
더 중요한 건 이런 생각이 불온하게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는 거야.”
그는 '불온한 생각들'에 대해 말하고 싶은 거였구나...
누구도 말하지 못하는, 논의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그제야 나는 J가 걱정됐던 것이다. 그래서 말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런데 결혼도 안 해본 형이 이런 얘길 하면 먹히지 않을 거야.”
이렇게 된 일이었다.
J를 보내고 돌아서 걷는 동안
그의 마지막 말을 떠올려 본다.
‘네가 하고 있는 그런 말이 날 더 외롭게 하는 거야.’
이 말에 집중하는 사이
여러 갈래의 찬바람이 머리를 식히고 지난다.
나는 서서히 술기운에서 벗어난다.
나는 원만한 관계가 만드는 외로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원만한 관계는 더 이상의 대화를 원하지 않을 때가 있다.
대신 누구도 나쁜 표정을 지어보이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J는 나에게 경멸하는 표정을 보였다.
바람이 귀를 긁으며 지난다.
듣고 있기에 시끄러울 정도다.
오히려 바람에게 귀를 들이대면 소리는 잦아진다.
J는 나를 경멸하고 갔지만 나는 아직 J와 함께 걷는다.
‘어느 쪽이 더 외로울까.’
그가 나에게 계속해서 말을 건다.
집에 다다르는 동안 술이 다 깨고
나는 외롭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