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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환 Feb 20. 2019

싸워라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목수J 작가K(15회)

나와 달리 J에게는

자주 어울리는 동갑내기 무리가 있다.

그 무리는 오랜 시간을 두고 몇몇 그룹이

이합집산을 거듭한 결과물인데,

나도 어느 날부터 거기에 슬쩍 끼어들게 되었다.

남자만 아홉 명,

단톡방에 모여서 일상을 공유한다.

아홉 명밖에 안 되는 무리지만 각자 하는 일, 사는 곳,

앉은 자리가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국내와 해외, 강북과 강남, 기혼자와 미혼자, 아이가 있고 없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현재가 다르고 지난 40여 년 세월 겪어온 과거가 다르다.


그럼에도 서로의 경조사에 언제든 발 벗고 나서고,

이따금 국경을 넘어 해외에서도 끼리끼리 만나는 등

빈번한 관계가 이어진다.

흔치 않은 무리다, 생각했는데

어쩌면 나도 고향을 떠나오지 않았다면

가능했을까.

그들을 향한 부러움 같은 게 내겐 있었다.


그들 중 H는 캐나다에 사는데,

이번 설 연휴 때 잠시 서울에 머물렀다.

그를 보기 위해 멤버들이 모인 밤.


나 역시 그 자리에 살포시 숟가락을 얹고

그들이 사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고 싶었다.

내가 보기에 이 무리의 특징은 묘하게도

서로 이해관계가 얽히거나 충돌하는 멤버들이 없다는 거였다.

그래서 싸움이 잘 나지 않는다.

J와 나만 빼놓고.


아직 아무도 취하기 전인데 내 맞은편에 앉은 J가 말했다.

“내가 취하기 전에 너한테 얘길 좀 할게.”

J옆자리에 앉은 C가 뭔가 이상 징후를 포착한 듯 J어깨에 손을 올렸다.

“벌써 좀 취한 거 같은데? 아냐?”

“뭐, 그랬을지도. 그럼 더 취하기 전에 말할게.”

그가 깜빡이를 켠 참이다.

나는 속으로 ‘Here we go’라고 말한다.

요즘 넷플릭스에 너무 빠져 지낸 탓이다.


“사실 나도 지금 이러고 여기 앉아있으면 안 돼.

오늘 여기 온 때문에 주문받은 가구는 이틀 사흘 더 늦어진다고.”

무슨 말을 하려나 싶어 나는 잠자코 있었다.

옆자리에선 캐나다에서 바다 건너 온 농담들이 이어졌다.

그들은 즐거워 보였다.

마치 그들을 피해 나에게만 불행이

닥쳐오는 듯했다.

여지없이 그는 최근의 내 게으름을 질타하며

공격적으로 들어왔다.

그의 입에서 신뢰와 책임, 이런 말들이 쏟아져 나오자

나는 어쩔 수 없이 방어적으로만 되어 갔다.

맛있게 잘 구워진 양꼬치와 중국식 가지튀김에도

손을 댈 수가 없었다.

34% 연태고량주를 안주 없이 연달아 석 잔을 마셨다.

이후론 그의 말들이 잘 기억나질 않는다.

“왜 너넨 만날 때마다 싸우냐?”

캐나다인이 말했다.

모임이 끝나고 난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자리를 떴다.

돌아오는 동안엔 물론

며칠이 지나서도 불쾌하고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설 연휴가 끝나고 H도 캐나다로 돌아갔다.

어느 날

H의 말이 떠올랐다.

'J와 나는 대체 왜 싸울까?'

그리고 비슷하지만 다른 질문.

'왜 그들은 싸우지 않을까?'

그러자

얼마 전부터 내일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나를 만난다는 J의 말이 생각났다.


내일 죽을 수도 있다면

우린 오늘 만나야 하고, 진심을 다해야겠지.

그러다 싸울 수도 있겠지.

내일까지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 싸워야 한다.

이걸 지나친 비약이라 생각한다면

오늘 싸우지 말고

오늘 죽지도 마시기를.


여기까지 쓰고서 J에게 전화를 했다.

마지막으로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

"형, 근데 왜 형이랑 다른 형들은 싸우지 않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나랑은 맨날 싸우면서."

"무슨 소리냐. 20년 넘게 싸웠지. 우린 그 단계가 다 지나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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