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J 작가K(2회)
“넌 소설이 뭐라고 생각해?
네가 생각하는 소설이 뭐냐고.”
요즘엔 뜸해졌지만 이건 J가 한때
내게 가장 자주 하던 질문이다.
단순한 질문 같지만
나는 당장에 대답할 수 없었다.
‘소설이 뭐긴 뭐야’하고 시작하는 아무말로 때우기엔
그의 말투가, 표정이
너무 진지했다.
그가 묻는 건
사전에 나오는 소설의 정의나
학교에서 배웠던 소설의 원리나 가치, 역사 따위가
아니었다.
고민 끝에
내가 했던 첫 대답이
‘소설은 허구를 갖고 진실을 쓰는 거야.’였으니,
그때만 해도 난 그저
어디선가 읽은 걸 따라 말했던 것이다.
J는 그때 화제를 바꿔 딴 얘기를 했다.
가장 최근까지도 나는
‘이 질문의 답은 하나에 머물러 있지 않고 계속 바뀔 수 있을 것 같군’
정도의 말로 얼버무렸다.
J는 다소 긍정했지만 J도 나도
그게 제대로 된 답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러던 J에게 하루는 내가
“그럼 가구는 뭐야?”하고 물은 적이 있다.
J는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가구는 집에서 쓰는 도구야.”
엇, 뭐야. 너무 싱겁다고 난 생각했다.
J가 가진 가구철학이 이정도였으면 난 왜그리 죽도록 고민했던 걸까?
그가 덧붙였다,
“나무에 대한 목수의 생각과
그걸 집에서 사용하는 사람의 쓰임이 만난 게 가구야.”
“.....씨발, 멋진데...”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다.
“내가 좋은 가구라고 생각하고 만들었다 한들,
사용자가 그렇게 쓸 수 없다면 그건 좋은 가구가 아닌 거지.”
그가 계속 말했다.
“내 가구를 사람들이 알맞게, 가치있게 사용한다면
그것보다 좋은 가구가 있을 수 없다는 거야.”
“나쁘게 만들어도 사용자가 좋다고 하면 장땡이다?”
“가구를 일부러 나쁘게 만드는 사람이 있을까?”
“철학이 없는...”
“뭐, 그래, 그럴 순 있겠지. 싸고 조금 덜튼튼한. 그저 그런 트렌드를 베낀...”
“응, 그런 가구에도 사람들이 만족할 순 있잖아.”
“그런 가구들과도 난 경쟁하고 있지.
근데 말이야, 사람들이 그런 가구를 정말로 ‘좋은 가구’라고 생각할 것 같진 않아.”
난 15년 동안을 소설 공모에 매달려온 소설가지망생이다.
어린이책 청소년책들을 출간한 적이 있지만
아직 소설가가 되진 못한 거다.
그동안 총 다섯 번 최종심 후보에 올랐다.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정도 되면 영 힘이 나질 않는다.
15년이다.
J는 이런 나에게
이 질문에 답하는 게 왜 중요한 일인지를 알고
스스로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난 한동안 그를 만날 때마다
그가 오늘 질문을 하진 않을까 두렵기까지 했다.
시간이 흐르고
여전히
나에게 소설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있는 이 과정이
나는 고통스럽고 동시에
사랑스럽다, 행복하다.
또 언젠가는 J처럼
확신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는
좋은 소설의 철학이
나에게도 들어앉길 바라고 있다.
“형, 잠깐 들어봐.
누구도 평생 내 뒤통수는 보지 못하잖아.”
“응, 내 얼굴도 보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지.”
“아, 진짜, 좀 닥치고 들어봐.”
“그래 그래.”
“소설은 말이야.
남의 뒤통수를 보면서 내 뒤통수를 그려보는 일이야.”
“흠...”
“그렇게 만들어진 소설을 보면서 독자들도
나와 똑같은 경험을 하게 되는 거지.
그들도 자기 뒤통수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어렴풋이 알게 되는 거야.”
“그래,, 말은 된다.”
“아, 씨발, 이런 말에는 좀 열광할 수 없어?”
누구에게나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경제적 이득 이외의’ 이유가,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우린 생각한다.
내가 지금 뭘하고 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들에게서만 뭔가 새로운 일이,
거지같은 이곳을 바꿀 새로움이,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철학이 없는 정치가,
철학이 없는 사업가,
철학이 없는 기자들에게, 공무원들에게, 선생들에게, 아버지들에게, 엄마들에게
얼마나 오랜 고통을 겪어왔나.
그러나 누구나 자신의 깊은 곳에서는,
좋은 일을 하면서 좋은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