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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이 Jan 08. 2019

09. 사막을 오른다는 것

모로코, 사하라 사막

  일몰을 보기 전까지 주어진 3시간 남짓의 자유시간. 몇 번이고 듄을 오르내리며 샌드보딩을 하던 사람들도 피곤했는지 하나둘 딱딱한 의자에 누워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나는 잠이 도통 오지 않아 포르투에서 산 그림 노트를 펼쳐 들었다. 그림을 그리다가 문득, 다른 투어 멤버들이 하던 말이 떠올랐다.     

  “듄 꼭대기에서 보면, 저 반대편이 정말 멋져.”     

  나는 아직 올라가 보지 못한, 듄의 꼭대기.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샌드보딩을 타보겠다며 듄을 오르내리던 사람들은 그곳에서 바라보는 반대편의 풍경이 정말 멋지다고 한결같이 이야기했다. 문득 궁금해졌다. 저 꼭대기에서 보는 사하라 사막은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고개를 치켜드는 궁금증에 옆에 앉아 있던 순주를 꼬드겼다.


  “순주야,

  우리 저 듄 위에 올라가 보자, 정상까지.”     


  듄을 오르는 건 아스팔트로 덮인 땅바닥이나 닦여진 길이 있는 산을 오르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고운 모래 사이로 발이 푹푹 빠졌다. 두 발자국을 걸으면 한 발자국만큼은 모래와 함께 다시 아래로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10초만 올라가도 숨이 헉헉댔다.      

  뒤를 돌아보았다. 순주는 정상을 보겠다는 마음을 접었는지 저 아래 자리를 잡고 누워있었다. 그래, 차라리 진작 포기하는 게 현명했지.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얼마 남지 않은 정상을 노려보았다. 분명 얼마 남지 않았는데 사막의 고운 모래는 자꾸만 나의 길을 방해했다.      

  ‘포기하기엔 아까운데….’     

  정상이 코앞이다. 다시 내려가기엔 지금까지 올라온 거리가 아깝다. 다시금 이를 악물고 듄을 올랐지만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껴졌던 정상은 도무지 가까워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그깟 듄을 오르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1년간의 시험공부로 약해질 대로 약해진 나의 ‘구제 불능’ 체력은 그것마저 도와주지 않았다.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볕에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왔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머리 한쪽이 띵했다. 모래 위에 털썩 주저앉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포기는 빨랐다.      


  “그래, 그만두자.”


 

   결국, 정상을 코앞에 남겨두고 나는 포기했다.      

  올라오는 건 힘들었지만 내려가는 건 금방이었다. 듄을 내려오자마자 가방에서 페트병을 꺼내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래, 내려오길 잘했어. 다시는 저 정상에 올라가겠다고 무모하게 도전하는 일은 없을 거야.”     



  일몰을 볼 시간이 다가오자 낮잠을 자던 사람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쉬고 있던 우리 앞에 나타난 부츠카는 내가 오르기를 포기했던 정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일몰 보려면 저기를 올라야 해. 어서 서둘러.”     

  ‘뭐? 거짓말이라고 해줘, 부츠카. 저기를 다시 오르라고? 한낮에 저길 오르겠다고 진을 빼서 지금은 힘도 없단 말이야.’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일몰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일몰을 보려면 저 듄을 올라야 한다고 진작 말해주지 않은 부츠카가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아까도 실패했는데 내가 할 수 있을까?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낮에 괜한 도전은 안 하는 건데….’

  망설이는 사이 사람들은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더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오를 거면, 지금 올라야 했다. 짧은 고민 끝에 나도 다른 사람들을 따라 다시 정상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체력도 안 좋으면서 햇빛이 가장 강한 시간에 듄 꼭대기에 올라보겠다고 그렇게 생고생까지 했으니 내가 한참 뒤처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대부분은 이미 정상에 앉아 쉬고 있었다.

  위로 올라갈수록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 사막의 고운 모래가 귀로, 코로, 입으로 들어왔다. 노란색 스카프를 다시 한번 단단히 동여맨 채 묵묵히 듄을 올랐다.


  그런데, 이상했다.      


  몸은 아까보다 지치고 힘들었지만, 정상까지 오르는 길이 더 편하게만 느껴졌다. 아니, 아니다. 편해진 건 길이 아니었다. 편해진 건 내 마음이었다. 혼자 듄을 오르던 아까와는 달랐다. 내 옆에는 함께 듄을 오르고 있는 순주가 있었고, 정상에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이 길을 걷는 것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내 마음을,

  내 발걸음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만들어주었다.      

  “어서 올라와!”

  “거의 다 왔어!”

  듄의 꼭대기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의 응원 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리고 마침내, 정상까지 두 발자국.     

  “제 손 잡아요.”          

  그때까지 말 한번 섞어본 적 없던 투어 멤버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기꺼이 그 손을 잡고 오늘 하루 그토록 닿고 싶었던 듄의 꼭대기에 올라섰다.    

                                        


  끝없이 펼쳐진 붉은 모래가 나를 반겼다.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 끝까지 수십, 수백 개의 크고 작은 사구들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바람이 불 때마다 사막의 고운 모래 입자들은 끊임없이 움직였다. 사막은 내가 바라보고 있는 그 순간에도 끊임없이 변하고 있었다. 숨이 턱 막혔다.     

                          

  “올라오길 잘했어.”     


  이 모습을 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비록 고작 듄을 오르는 일이었을지라도 한 번의 포기 뒤에 거둔 성공은 참으로 값졌다. 다시 듄을 오르던 내내 나는 어차피 포기할 도전은 의미 없는 것이라 여겼지만 도전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이었다.  

   

  혼자 끙끙거렸던, 한낮의 그 무모했던 시간이 없었더라면

  내가 오르는 길을 누군가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 수 없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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