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하실라비드
나는 여행을 하면서 정해진 계획을 바꿔본 적이 별로 없다. 선택의 순간이 오면 나는 늘 일정을 바꾸지 않는 편을 택하는 축에 속했다. 이유는 다양했다. 돈이 없어서, 일정이 꼬여서…. 하지만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가끔 그 선택의 순간이 후회되곤 했다.
레나는 내 첫 카우치 서핑 호스트였다. 당시 나는 혼자 여행하는 것도, 유럽을 온 것도 모든 게 처음이었고 그만큼 서툴렀다. 하이델베르크에 가기 전날, 그녀는 나에게 하이델베르크에 안 가고 자신과 함께 노는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예매해둔 표가 아까워서 일정이 꼬이는 게 무서워서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때가 여행을 시작하고 5일이 채 안 된 시점이었으니 여행 초보였던 당시의 내 선택을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지만, 후회가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이델베르크에 못가도 괜찮으니 레나와 밤을 새워서 놀걸. 그랬다면 훨씬 더 재밌었을 거야. 그깟 하이델베르크, 다음에도 갈 수 있는 건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돈이 없어서, 일정이 꼬여서 그녀의 제안을 거절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정해진 것을 바꿀 용기가 부족했을 뿐이었다.
선택의 순간은 이번 여행에서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사하라 사막은 개미지옥이야. 거기 있다 보면 떠나기 싫을걸?”
친구의 말이 맞았다. 사하라는 개미지옥이 분명했다. 이곳에 머문 지도 벌써 다섯 밤이 지났다. 사막을 떠나야 할 날이 코앞으로 성큼 다가왔으나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이틀 뒤면 정든 사하라를 떠나 셰프샤우엔으로 향해야 한다.
‘어떡하지. 원래 일정보다 하루라도 더 머물면 셰프샤우엔은 포기해야 해. 하지만 나는 셰프샤우엔도 가보고 싶은걸.’
셰프샤우엔은 내가 모로코 여행을 준비하며 사하라 사막과 함께 고대했던 여행지이기도 했다. 파란빛으로 물든 셰프샤우엔의 모습을 처음 사진으로 마주한 순간 ‘나는 이곳도 사랑하게 되겠구나.’하고 확신했으니까.
사하라와 셰프샤우엔.
나의 마음이 그사이 그 어디쯤에서 방황하고 있을 때 누군가 입을 열었다.
“티켓은 찢으라고 있는 거야.”
티켓을 찢으라는 그 말이 어찌나 달콤하게 들리던지. 나는 혹시나 나의 선택을 후회하게 될까 봐 나의 마음을 외면한 채 누군가 내 등을 떠밀어주길 그저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내 마음은 줄곧 사하라에 더 머물기를 원하고 있었는데….
‘맞아, 티켓은 찢으라고 있는 거지. 셰프샤우엔은 나중에도 갈 수 있잖아. 난 지금 사막에 더 있고 싶으니까 사하라에 있자.’
마라케시에서 미리 끊어두었던 셰프샤우엔행 버스 티켓의 운명은 그렇게 결정됐다.
결론적으로 내 감정만을 바라보고 내린 선택의 결과는 달콤했다. 사하라에 더 머문 2일간 나는 정말 행복했으며 ‘셰프샤우엔’이라는 모로코에 다시 올 좋은 핑계까지 생겼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