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
얼마 전 친구 한놈이 함께 살던 처와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고 왔다.
내가 결혼식 사진을 찍어준 것이 12월이었으니, 대략 2년 하고 6개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친구의 신혼은 끝이 났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친구가 그런 일을 겪었는데
가만히 있을 수야 있겠는가 시간 맞는 친구 몇이 모여 술잔을 기울였다.
결혼일랑 해본 적도 없으니 이혼이란 비극에 가까울 중대사를 겪은 친구에게 나 따위가 무슨 말을 해줄 수 있겠는가. 거기다 나는 어지간해서는 경험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는 조언하는 법이 없기에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도 마주하는 동안에도 내내 무슨 말을 해줘야 하나 짜장과 짬뽕만큼 고민했지만, 아무렴 친구사이에 그딴 고민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
일단 한잔, 두 잔. 그냥 마시고 떠들었다.
미여 터지는 강남역 뒷길, 고깃집 골목에서 오직 우리만 살아남은 것처럼.
"이혼은 지능 순이지 그러니까. 넌 진짜 똑똑한 거야"
"내가 똑똑한 건 알지만(하하) 애 아빠 앞에서 못하는 소리가 없다"
"너는 결혼도, 직장도 안 어울려. 살던 대로 살아"
"욕이냐 칭찬이냐"
"한놈은 이혼남, 한놈은 애 딸린 유부남, 한놈은 비혼 주의자. 기가 막히는 조합이로구만"
갑자기 생각이 많아졌다.
친구의 이혼을 보니 꼭 결혼이 나은 것 같지도 않고, 그런대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친구를 보면 또 비혼이 나아 보이지도 않고 말이다. 생각해보면 나도 결혼이란 것을 하고 싶었고, 실제로 생전 관심도 없던 대출상담이라던가, 청약 따위라던가 하는 것들을 알아본 적이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결과론적으로는 친구들 중에서 가장 똑똑한 놈이 되어버린 이 상황이 사실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난 결혼 안 해봐서 잘 모르겠지만. 그냥 곁에 있어도 외로우면 안 되는 것 같아. 인간의 관계에서 노력이야 그냥 기본인 거고, 상대가 사랑이라는 관계를 통해서 스스로를 잃지 않아야 하고 말이야"
"그렇지"
"어, 인정"
타인을 위해 태어나는 인생이란 건 예수 하나로 족하다. 그 얼마나 고통스럽고, 아픈 인생일까.
자기 자신을 구태여 증명할 필요도 없다지만, 자신을 희미하게 만드는 관계란 또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서글프지만 오늘도 바람은 불고 아픔은 날카롭게 누군가의 가슴을 후빈다.
인생사 어쩔 수 없다지만 오늘은 좀 마시고 취기로라도 깊이 잠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