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
# 그 누구도 아닌
#에세이 #산문 #일상 #비문
12시 30분.
식사를 위해 사무실을 나온 미정은 무엇을 먹을까 잠시 고민하다,
딱히 생각이 없었는지 김밥 한 줄로 간단히 끼니를 해결했다.
아직 30분 이상 남은 점심시간.
별 고민 없이 근처 커피숍으로 익숙한 걸음을 옮겼다.
종로 한복판에 있는 커피숍 인대다 점심시간까지 겹친 탓에 커피숍 안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미정은 혹시나 있을지 모를 빈자리를 찾기 위해 카페 안을 두리번거리다,
때마침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서는 무리를 발견했다.
무리가 테이블 위를 대충 정리하고 떠나자마자
손에 쥐고 있던 노트로 자리를 맡아둔 미정은 커피를 주문하고 돌아와 스러지듯 털썩 의자에 앉았다.
안심한 듯한 표정의 미정은 창가로 들어오는 빛줄기를 바라보았다.
커피숍 창가로 들이치는 빛줄기는 마치 흐르는 물처럼 찰랑거리고 있었는데,
길가로 즐비한 가로수의 잎사귀가 바람에 흔들리는 탓인 것 같았다.
미정은 그런 빛줄기를 따라 커피숍 이곳저곳으로 시선을 움직이다,
테이블 위 무심히 놓은 노트로 시선을 멈춰 세웠다.
괜히 무언가 써야 할 것만 같은 마음이 들었는지,
미정은 노트의 빼곡한 월간 일정들 사이 빈 페이지를 찾아 무언가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정해진 시간에 울리는 알람.
정해진 노선을 움직이는 버스와 전철.
정해진 일정에 맞춘 보고서....
낙서처럼 짧게 적어 내린 문장, 마침표 몇 개로 끄적거리기를 그만둔 미정은 어쩐지 자신이 적어 내린 문장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자신 역시 직장인들의 뻔한 패턴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직장생활로 미뤄두었던 지난 꿈들이 떠오르기라도 한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삼십이 번 손님,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아이스 한 잔 나왔습니다.”
주문표를 확인해 카운터에서 받아온 차가운 커피를 밀어 넣듯 벌컥 몇 모금 삼킨 미정은 마치 소주 첫 잔을 마신 것 마냥, 정전기에 감전된 것 마냥 잠시 몸을 바르르 떨어댔다. 이내 떨림이 멈춘 미정은 언제 그랬냐는 듯 안온한 표정이 되어 눈을 꼭 감았다.
잠시 눈을 감고 숨을 몇 차례 내쉬던 미정은 눈꺼풀을 들어 노트로 시선을 다시 옮겼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펜을 손에 말아 쥐고, 노트 위로 손을 움직였다.-정해진 시간에 울리는 알람.--정해진 노선을 움직이는 버스와 전철.--정해진 일정에 맞춘 보고서.-
이따금씩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이대로 괜찮은 걸까?
지금 걷는 길이 나에게 맞는 길인 걸까?
아니, 애초에 이 길을 선택한 사람이 내가 맞나?
분명히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닐 테고.
생각에 생각을 더해 고민에 이른 적도 많았지만 딱히 해답을 찾아본 일도 없는.
그런 막연하고 대중없이 떠오르는 생각.
그렇게 떠올라대는 생각들이 못내 불쾌한 건 사실이지만 분명 떠오르는 이유가 있겠지.
어쩌면 아픈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 같은 걸지도 몰라.
내가 인지하지 못한 나의 생활 속 문제들이 나에게 말을 거는 걸까....
미정은 자신이 적어 내린 글을 쭉 몇 차례 읽다 노트를 덮었다.
그리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카운터에 잔을 반납하고 거리로 빠져나왔다.
커피숍을 빠져나온 미정은 거리 가득 분주하게 걷는 인파들 사이 잠시 방향감각을 잃은 듯 좌우를 두리번거리다,
이내 인파들 세 희석되듯 천천히 섞여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