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엄마와 싸우며 서로에게 모진 말을 내뱉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몸살을 앓으며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먼저 변해야겠다. 내 삶의 주인은 나니까. 괴로울 때마다 법륜스님의 영상을 보며 계속해서 다짐했다. 나는 나를 책임져야 하는 성인이다. 나는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다. 나는 부모의 노예도 아니다. 나는 누구에게 종속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다.
엄마와 싸운 후 엄마도 나도 서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나는 나대로 섭섭했고 엄마는 엄마대로 괘씸했을 것이다. 부모님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우리 부모님은 항상 괘씸하다고 말했다. 그 말은 어딘가 나를 심하게 내려치는 느낌이 있었다. 그 매를 피하기 위해 괘씸한 딸이 되지 않으려고 애써왔다.
그러나 이제 부모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무엇보다 내 삶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서 부모님의 요구에 마냥 끌려다니는 자신이 싫었다. 나는 나를 가장 사랑하고 싶었다. 그 무엇보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게 가장 절실했다.
더 이상 부모님의 가게에도 나가지 않았다. 더 이상 엄마의 전화도 오지 않았다. 그러자 내가 가질 수 있는 시간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난 후 다시 돌아올 때까지 7시간 정도를 오롯이 나를 위해서만 쓸 수 있다니.
시간만 늘어난 것이 아니었다. 전에는 내 의견보다 엄마 의견이 더 중요했다. 엄마가 좋은 생각이라고 하면 하고, 조금이라도 인상을 쓰거나 ‘그게 무슨 돈이 되냐?’고 하면 마음을 접었다. 내 인생의 모든 결정권을 엄마에게 넘겨주었다. 이제는 내가 좋은 것은 할 수 있었다. 스노우볼안에 갇혀있다가 얇은 유리막이 깨진 느낌이었다.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성인들은 다 이런 생각을 하며 사는 걸까? 도대체 얼마나 스스로를 가둬두고 있었던 걸까.
그렇게 생각하자 삶의 목표도 다시 보였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 내 인생을 더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에 초점을 맞춰 생각을 해보고 싶었다. 분명한 것은 부모님의 기대대로 사는 것은 스스로 가치 있는 삶을 산다고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업을 하시는 부모님은 항상 돈이 최우선의 목표였다. 그리고 자식들도 빠르게 자산을 늘려 안정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푸념 끝에 늘 말했다.
“너희가 빨리 자리 잡아야 나도 안심을 하지.”
그 말에 항상 마음이 바빴다. 집에서 아이만 키우고 있는 건 죄를 짓는 느낌이었다. 돈을 빨리 벌어야 하는데. 돈을 벌지 않는 건 무능력하다고 느꼈다.
돈… 물론 많이 벌고 싶다. 그렇지만 돈만 많고 싶지는 않다. 돈만 버느라 중요한 것을 잃고 싶지는 않다. 사업을 하는 부모님 덕에 물질적으로는 크게 부족하지 않게 살았지만 정서적인 굶주림에 시달렸던 내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다. 돈은 삶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아이들에게 비싸고 좋은 장난감을 사주면 너무 좋아한다. 멋진 식당에 데려가 비싼 밥 한 끼 사주면 신기해하고 맛있어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잠시다. 아이들은 30분 정도면 장난감을 질려했다. 식당에서도 잠시동안 즐거워하다 이내 질려한다. 그러나 엄마, 아빠와 함께 했던 즐거운 시간에 대해서는 오래도록 이야기한다.
나는 지금도 부모님과 함께 갔던 멋진 식당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가난할 때 먹었던, 트럭에서 파는 전기구이 통닭은 참 기억에 남는다. 그 맛 자체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부모님, 동생과 함께 산책하다가 전기구이 통닭을 파는 트럭이 보이면 부모님은 항상 멈춰 통닭을 사셨다. 종이봉투에 담겨있던 따뜻한 전기구이 통닭이 든 까만 봉지를 들고 집으로 가 상 위에 펼쳐두고 온 가족이 맛있게 나눠 먹은 기억은 아직도 남아있다. 그 기억이 어릴 때 남아있는 나의 최대의 행복이다. 맛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순간의 기억들은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다.
나는 아이들에게 그런 시간을 많이 가지게 해주고 싶다. 시원한 밤하늘 아래서 이야기 나누며 걷는 시간, 전기구이 통닭의 냄새와 조명에 이끌려 트럭을 쳐다보고 있으면 부모님이 ‘먹고 싶니? 사줄까?’ 했던 물음, 고개를 끄덕이면 ‘두 마리 포장해 주세요.’ 하는 아버지의 말에 신나서 동생과 방방 뛰었던 발걸음, 까만 옻칠이 돼있는 둥근 상에 둘러앉아 나와 남동생에게 적당히 식은 닭다리 하나씩을 쥐어주시던 아버지, 체할라 천천히 먹으라며 콜라를 가득 따러주는 엄마. 편안했고 따뜻했던 야식 시간의 정다움.
고통스러웠던 어린 시절에 간간히 들어있는 친절한 기억들이 지금 나를 지탱해 주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나중에 성인이 됐을 때 어려울 때마다 꺼내볼 수 있는 추억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런 것들이 비싼 장난감이나 맛있는 음식들로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아는 어른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