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밥 꼬다리 안 먹는 사람이야."
내가 초등학생일 때, 아버지와 남동생 그리고 나 셋이서 수박을 먹었다. 한참 먹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말했다.
"옛날에 여자들은 남자들이 먹다 남긴 수박 흰 부분만 먹었다."
어떤 의미로 말씀하셨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순간 이후로 한 조각도 삼킬 수 없었다. 속에 들어간 수박마저 다 게워내고 싶었다. 내가 먹은 수박 껍질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빨간 과육은 얼마 없었다. 이 정도면 깨끗이 먹은 듯한데, 나는 왜 저런 소리를 들어야 할까.
내가 수박 껍질만 가만히 노려보고 있자 아버지는 내게 마지막 수박 조각을 마저 먹으라 하셨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꼼짝하지 않았다. 거울로 내 표정을 봤다면 알 수 있었겠지만, 나는 내 얼굴을 볼 수 있을 리 없었다. 아마 잔뜩 뿔이 난 얼굴을 하고 있었을 거다. 말은 숨길 수 있어도 표정은 잘 숨길 수 없으므로.
내가 가만히 있자 아버지의 언성이 점차 높아졌다.
"먹으라니까?"
그래도 버티고 꼼짝 앉고 있었다.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남동생이 마지막 남은 수박을 냉큼 집어 먹었다. 아버지는 뭔가 말을 하려고 입을 들썩이다 말고 자리를 떴다.
내 도시락에는 김밥 꼬다리가 반 이상이었을 때부터였을까. 동생의 정갈했을 김밥 도시락을 떠올리며 내 도시락을 쓰레기통에 쏟아 버렸던 일, 본인이 끓여 먹은 라면 설거지를 동생이 하고 있는 것을 봤을 때 나한테 쏟아지던 아버지의 역정, 아들을 낳고 너무 기뻐 미역국을 몇 사발로 들이켰다며 자랑스레 나에게 얘기하는 엄마. 남아선호가 당연시되고 차별을 밥 먹듯 당했던 그때. 그때부터 내 한쪽은 분노로 가득 찼다. 그 분노는 향할 곳이 없었다.
남편과 연애시절 같이 김밥을 먹은 적이 있었다.
김밥 꼬다리가 제일 맛있다며 나에게 건네는 그의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나는 김밥 꼬다리 안 먹는 사람이야."
그는 나를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김밥을 쥔 젓가락이 갈 곳을 잃고 허공에서 멈췄다. 머뭇거리다 자신의 입으로 쏙 집어넣었다.
그 후로 남편은 김밥을 먹을 때면 제일 먼저 양쪽 끝 김밥 꼬다리를 먼저 먹었다. 그리고 자신의 김밥 가장 가운데 두 개를 내 김밥 끝에 붙여놓았다. 그러면 나는 그의 배려를 젓가락으로 집어 꼭꼭 씹었다.
나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집에서 귀한 아들 취급을 받았을 거니까. 시누들 앞에서 오로지 아들 얘기뿐인 시어머니를 보면서 그 생각은 더 확고해졌다. 평생 가장 좋은 부분만 먹었을 텐데, 나한테 좀 양보하는 게 뭐 그리 대수겠나 싶었다.
얼마 전 우리 아이들의 소풍날, 정신없이 김밥 도시락을 싸고 남은 꼬다리는 그대로 도마 위에 있었다. 등원 준비를 하는 틈에 남편이 접시에 담아 아이들과 함께 김밥 꼬다리를 먹는 걸 보자 화가 치밀었다.
"그걸 왜 먹어!"
소리 지르는 나를 영문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아이들과 남편이 쳐다봤다.
"여기 멀쩡한 김밥이 있는데, 왜 꼬다리를 먹어!"
그러자 첫째가 말했다.
"엄마, 이것도 멀쩡한데요?"
그 말에 나는 알았다. 멀쩡하지 못한 것은 김밥 꼬다리가 아니라 내 비뚤어진 마음이었음을. 별 뜻 없는 말에도 상처받고 차별당했다 분노를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그저 김밥 끝부분일 뿐인데 의미 부여를 한 것도 나였다. 남편에게는 역차별을 하면서도 당연하게 생각했다.
임상심리학자이자 뇌과학자인 허지원 님의 책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성숙한 수준의 재양육(reparenting)을 제공해 줄 수 있는 편안한 사람을 만나 성숙한 내면을 구축할 기회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편안한 사람은 누구나 될 수 있다. 나는 나를 다시 키우기로 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내 마음속 자라지 못하고 있는 어린아이도 함께 키우기로 마음먹었다.
남편 옆에 앉아 김밥 꼬다리를 바라봤다. 아이들은 먹지 말아야 할지 계속 먹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었다. 내가 먼저 꼬다리를 집어 들고 입에 쏙 집어넣자 아이들은 웃었다. 그리고 다 함께 먹기 시작했다.
"맛있지, 엄마?"
그날부터 나는 김밥 꼬다리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