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 국가의 Youtube 채널에는 사회면을 다루는 토론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채널이 많은데 반해, 국내에는 정치사회 관련 주류가 토론을 가장한 선전용 프로그램만 존재한다. 학술적이고 성실한 사고를 가진 차원의 토론이 없어서 아쉬운 마음이 있다. 감상 후 발생하는 3가지 오해를 적으며 생각을 정리해본다.
오해 1. 지젝은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
지젝 : 좌파(Leftist)의 경제적 무능이 세계적인 극우화 현상을 출현시켰다.
지젝의 강연을 들어본다면 그를 단순한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자로 분류하는 것은 큰 오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 가정 아래서 논쟁을 한다면 원했던 답을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슬라보예 지젝은 헤겔의 영향을 받은 공산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익히 알려져있듯 마르크스 또한 헤겔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때때로 지젝이 공산주의자이면서도 마르크스를 비판하는 이유는 그것이 실현되었을 때 설계주의적 관점이나 정교함이 부족하다는데 있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부 주장에서는 다시금 헤겔로의 회귀를 말하기도 한다. 실패 사례를 나열하다가도 우익의 관점에서 처럼 자유시장경제나 정부 개입 최소화의 원칙이 대안이 될 수 있다가 아니라 더욱 정교한 설계와 연구, 대안으로 국가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데 있다.
예컨대, 역사적 실례에서 혁명 급진좌파 정부가 국가를 지배하게 되었을 때 긴축재정안을 거부하기는 하지만 이후 자신들이 혁명을 외치던 과거를 망각하였으며 그 목표를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였다는 무능을 비판한다. 그 원인은 외부 자본주의 국가의 압박 등의 이유를 들어 설명한다.
그는 우파의 성공 모델을 인정한다. 민주주의가 부족하거나 부재한 권위주의 통치 체제라고 설명하긴 하지만 리콴유와 박정희 등에 대해 인정하고 있는 편이다. 따라서 그는 우파처럼 경제 성공의 대안적 방법론을 연구하고 제시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돌아가, 그는 일부 혁명 이후의 새로운 지배 계급의 무능이 좌파에 대한 신뢰를 감소시켰으며 극우화를 초래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좌파는 새로운 복지 국가에 대해서 연구를 통해 개발하여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본다. 이런 점을 보면 한국에서 보는 좌파와는 달리 자신들 내부에서 문제를 진솔하게 찾고 있다.
오해 2. 피터슨이 지젝에게 패배한 토론이다.
처음부터 조던 피터슨 교수는 지젝 교수를 전통 마르크스주의자 정도로 오판 혹은 그렇게 분류하고 논파할 의도가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솔직히 마르크스주의자에도 다양한 분파가 존재하기 때문에 여러 담론을 다루기에는 피터슨 교수의 지적인 한계 탓에 논의가 불가능했다. 내가 보기에는 피터슨의 이해는 [공산당 선언] 정도로만 이해하는 듯하다.
따라서 나는 이것이 피터슨의 패배로 환원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원래부터 각기 다른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충돌하는 지점을 제대로 찾지 못하였을 뿐이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무지가 논의를 가로막았다. 한국 공영방송의 토론 프로그램처럼 정치 홍보의 장에 가깝지도 않아 목소리도 크게 높이는 상황도 없었다. 둘 다 의외로 정치적 레토릭을 통한 것들은 적었으며 솔직한 발언을 했다. 분명 상이한 주장이 존재하지만 반대로, 공산주의의 ‘현실적인 적용(Marxism in practice)’이 얼마나 끔찍했는지에 대해 일부 뜻을 같이 하기도 하는 생소한 장면까지 볼 수 있었다. 다만 지젝은 맑스주의에 대해 더 좋은 Merits가 있음을 주장하는 입장이었다.
오해 3. 포스트 모더니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라면 이렇게 정의하겠다. "우익의 입장에서는 기존의 가치를 위협하고 해체하는데 동의하는 사상, 범-진보적 이념을 아우르는 그들을 통칭하여 실용적으로 만든 개념이었다." 다시 말해, 보수주의의 역을 상기시키면 된다. 실존주의자라 자칭하는 학자도 될 수 있다. 데리다, 라캉 모두 그런 입장과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하겠다. 결국 그런 맥락에서는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자만큼 동등한 위협이기 때문에 그들이 실권을 얻었을 때 위선과 인본주의적 모순이 발생한다는 것을 지적하는데 핵심이 있다.
이 영상에 결론을 내리자면 주제가 [Hapinness : Marxist vs. Capitalism]인데 반해 지젝은 마르크스를 적극 변호하지 않았고 피터슨은 지젝을 공산주의자라는 범주와 공통점을 찾는데 실패하였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