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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Jan 17. 2024

인생이 드라마

아침부터 하늘이 잔뜩 흐렸다. 5시 30분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은 떠졌지만 몸이 일으켜지지가 않았다. 차라리 조금 더 자는 게 낫겠다 싶어 다시 눈을 감아 보아도 몸만 무거워 침대 위에 머물러 있을 뿐 눈꺼풀은 점점 더 가벼워졌다.


외삼촌을 만나러 가기로 한 날이다. 이번 주까지 휴가지만 계속해서 회의가 잡혀있는 오빠는 오전에 급하게 업무를 보고 바로 출발하기로 했고, 나는 친정에 가서 엄마를 픽업하기로 했다. 오빠의 도착 시간에 맞춰 우리도 천천히 출발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삼촌이 계신 곳에 가까워질수록 눈은 더 많이 그리고 더 빠르게 내렸다. 언젠가 강릉에 갔을 때 트랙터로 눈을 치우는 걸 보았는데, 이 상태로 몇 시간이라면 그때의 강릉처럼 트랙터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한 달쯤 전부터 작은 외삼촌과 큰어머니, 그러니까 당신의 둘째 처남과 형수가 보고 싶다고 말씀을 하셨단다. 그러면서 더 이상 운전을 하지 않는 엄마에게 차를 사라고 하셨다지. 보고 싶은 사람을 다 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모시고 가기에도 그분들이 오시기에도 여의치 않았다.


내 꿈에 아버지가 나타나 저녁밥을 차려 달라고 말씀하시고 일주일 만에 아버지는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다. 아침에 일어나 생생하게 기억나는 꿈을 핸드폰에 메모했고, 계속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꿈 얘기를 했었다. 그리고 내가 그 꿈을 꾸었을 무렵, 아버지 꿈에는 돌아가신 큰아버지가 나왔다고 했다. 꿈에 나타난 큰아버지는 '우리 형제들 나랑 같이 가자'라고 하셨단다. 꿈 얘기를 들은 엄마는 아버지에게 절대 큰아버지 손을 잡으면 안 된다고 했다던데, 우리 아버지, 결국 그 손을 잡으신 건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은 큰아버지의 첫 번째 기일이었다.


아버지가 보고 싶어 하시던 작은 외삼촌은 감기가 길어지고 컨디션이 나빠져 응급실에 가셨다. 일반 병실로 옮겨졌으나 갑자기 상태가 나빠져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의식 없이 호흡기에 의존하시다가 다음 날 오후 돌아셨다. 응급실에 가신 날도, 중환자실로 들어가신 날도, 마지막 돌아가신 날도 모두 아버지와 같은 날이었다.


아버지의 빈소에서 엄마는 당신 오빠의 죽음을 전해 들었다. 새벽에 남편을 잃고, 오후엔 오빠를 잃은 엄마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날이었다.


드라마에서나 일어날법한 일. 영화에서나,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는 말들을 한다. 그런데 드라마나 영화, 소설도 모두 다 우리가 사는 모습이 아닌가. 결국은 우리가 사는 게 그렇다. 매일매일이 유쾌하고 명랑하고 로맨틱하기를 바라지만, 매일매일이 그렇게 마냥 그럴 수는 없는 거지. 그런 드라마 같은 현실을 살아내는 중이다. 지금은 비록 분홍색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다 뜬금없이 눈물 콧물 쏟아가며 엉엉 울 정도로 슬픈 챕터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피 엔딩이기를 바란다.


오늘 삼촌을 마주한 엄마는 '우리 오빠 눈 맞지 말라'라며 쓰고 간 우산을 씌워주고 내려왔다.

삼촌, 우리 아빠를 만나거든 언제나 나를 두 팔 벌려 안아주었던 것처럼 그렇게 좀 꽉 안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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