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상담사가 운영하는 심리 독서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매일 아침 함께 읽는 책과 연결되는 마음을 돌아보는 질문을 받고 있는데 지난주 금요일 질문을 시작으로 이번 주 마음 읽기의 질문은 조금 어려웠다. 내면을 들여다보고 상처를 들춰보며 마음은 물론 몸까지 힘들었다는 분이 있을 정도로 그 질문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해서, 조금은 쉬어가자는 의미로 어제오늘 이틀간은 비교적 가벼운 질문을 받았다.
올해가 시작되면서 세웠던 목표가 있었겠죠. 남은 기간 꼭 하고 싶었던 일 있으실까요? 아니면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으신가요?
새해가 되면서 남편과 했던 이야기가 많은 거 바라지 말고 그저 <건강하자>였어요. 몸도 마음도 건강하면 뭐든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사실 작년에 비해 운동을 많이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아예 놓지는 않으려 애쓰고 있고, 똥강아지들 산책 덕이겠지만 하루 1만 보는 꼬박 걷고 있어요. 16:8 간헐적 단식을 한 지는 한 달이 넘어가고, 최근에는 하루에 물 2리터를 마시기도 하고 있고요. 다음 달 건강검진이 있는데 나쁜 소리만 듣지 말자…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문득, 부석사에 다녀오고 싶어졌어요. 좋아해요. 부석사. 못 간지 오래됐는데. 초입에 은행나무 길(아직 있겠죠?)이 몹시도 걷고 싶어졌어요. 겨울이 오기 전에 혼자라도 부석사에 다녀와야겠네요.
라고 대답했다.
나의 대답을 들은 참여자 중 한 분이 부석사에 추억이 있는지를 간결하게 물었다.
부석사의 추억이라…
아마도 그 시작은 정호승 님의 시였을 것이다. 믿기 어려울 수 있겠지만 시를 참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내가. 사랑하다가 죽어버리라며 시작되는 <그리운 부석사>를 좋아했고, 그래서 부석사에 처음 가게 되었던 거지. 결혼 전 혼자서 기차 타고 버스 타고 가 근처 식당에서 밥도 먹고 사과도 먹고 했던 기억을 시작으로, 남편이 남친이었을 때도, 그 남친이 남편이 되어서도 부석사는 수시로 잊을만하면 한 번씩 다녀오는 곳이었다.
부석사로 가는 길에 은행나무 길이 참 좋은데, 어쩌면 그래서 더 이 계절이 되면 생각이 나는가 보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석사에 앉아서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자면 그냥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그 모습이 정말 장관이라 그 앞에선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부석사에 갔던 건 심정지로 소파수술을 하고 나서였다. 초음파 사진을 어찌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 부석사에 가서 태우겠다는 혼자만의 다짐을 했지만 차마 남편에게는 말을 하지 못했다. 못하겠더라. 부석사에 가서 양해를 구하고 거기서 태우는 것을 생각했다. 태울 때 담을 틴 케이스와 불을 붙일 때 사용할 캔들 라이터(부부 모두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냥 라이터는 없다)까지 챙겨갔는데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허락을 받지 못할 확률이 더 높겠지만, 만약 그곳에서 태우게 된다면 혹여라도 그곳을 다시 찾을 때마다 생각이 나 마음이 아플까 덜컥 겁이 났기 때문이다.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 길 뒤늦게 남편에게 말을 하고 휴게소에 들러 준비해 간 틴 케이스에 담아 남김없이 태웠던… 잊고 지내던 기억이 대답을 하며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