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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나무숲 Jun 09. 2023

Free한 도비의 과거 회상

지난 4월 중순까지의 내 인생을 한 마디, 아니 두 마디로 표현하면 이렇다.


평범하고, 순탄했다.

그렇다고 지금 내 인생이 비범하거나 특이하다는 건 아니다. 그냥 미래가 보이지 않아 불안할 뿐이다.


이직과 퇴직을 결심한 작년 말부터 혼자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했었다.

내가 멘탈이 약한 걸까. 괜한 엄살을 부리는 걸까.

남들도 안 힘들겠나, 다들 꾹 참고 잘 해내고 있는데 나만 러는 건 아닐까.


매일 밤 통화하는 엄마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던 것 같다.

정확한 말이 기억나진 않지만, 힘겹게 옮긴 회사 꾹 참고 잘 다녀보라고 하셨다.

회사를 다니면서 이직 준비를 하는 게 쉽지만은 않으니까. 엄마는 딸이 고생하는 게 싫었을 것이다.


나도 내가 고생하는 건 싫었다. 하지만 선택해야했다.

지옥에서 계속 고생하느냐, 지옥을 벗어나기 위 고생을 하느냐. 답은 하나뿐이었다. 지옥을 벗어나야했다.


앞서 말했다시피 그 동안의 내 인생은 정말 순탄했던 것 같다.


학창시절 밤늦게 인터넷 하느라 학교에 있는 시간 동안 내내 졸았지만,

그런 것에 비해 성적은 그럭저럭이었고,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수능 성적이었지만 집과 가까운 학교에 진학할 수 있어 재수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신이 내린 벼락치기 실력으로 학점을 잘 받은 덕분에

산학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남들 다 겪는 취준의 시기를 겪지 않아도 되었다.


물론 시련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입사 후 인성 파탄 난 상사들로부터 시달린 나는 이명, 불안증, 강박증, 우울증, 불면증 겪게 되었고,

그 덕분에 회사 생활을 잠깐 쉬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때 정말 힘들긴 했었다. 생각보다 몸 상태가 안좋았기 때문이다.

잔병치레로 매번 어딘가는 아팠던 나였지만, 휴직 직전과 초기에는 이전보다 더 힘들었던 것 같다.


특히, 우울증이 심했던 휴직 직전에는 나도 모르게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군'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 생각을 한 내 자신에 놀라곤 했다.

우울증 환자들이 잠깐 힘을 차린 사이에 목숨을 끊는다는 사실을 체감한 순간이었다.


그 당시 나의 삶의 목표는 오로지 휴직이었다. 다 때려치고 그냥 쉬고 싶었다. 잠만 자고 싶었다.

그렇게 얻어 낸 휴직 후에는 천국이 펼쳐질 줄 알았다. 아니었다.

본가에 돌아간 후, 긴장이 풀렸던 나는 더 앓았다.

잠깐 일 보러 시내로 가던 차 안에서 갑자기 숨쉬기가 어려워 허겁지겁 차를 멈춰 세운 적이 있었고,

집에 가만히 있는데도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약을 먹고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어야 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이 때 처음으로 가위 비스무리한 것에도 눌려보았다.


그래도 인생은 새옹지마, 전화위복이라고 생각했다.

복직 후 다른 곳으로 파견을 가게 되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었으니까.

3년이라는 파견 근무 기간 동안 일의 재미를 깨달았다.

파견 기간의 3분의 2는 코로나와 함께 했지만, 코로나와 함께 일을 해내는 것도 꽤 재미있었다.


파견 기간이 끝나갈 무렵, 내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다시 돌아가면 일의 재미를 일깨워준 이 일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직하기로.


이직을 결심하게 된 데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가 가장 큰 이유였고, 새로운 조직에서 일해보고 싶었다. 좀 더 열린 곳에서.

그리고 좀 더 큰 지역에서 살아보고싶었다.


마지막으로 쫌스러운 이유가 있는데,

살고 있던 기숙사에서 내쫓길 상황이라 그냥 이직과 함께 이사를 하고 싶었다. 그게 재작년 말이다.


고배도 많이 마셨지만, 순탄하게 이직을 할 수 있었다.

딱 하나 곳에 서류가 붙어 1차 면접을 보았고, 2차 면접에 붙어 최종 합격을 했다.

지금 봐도 굉장히 스무스한..

 

사람은 참 간사하다고.

작년 초, 면접을 보고 제발 붙게 해달라고 간절했던 나인데,

그런 회사에 정을 떼고, 학을 뗀다는 게 참 웃기긴 하다.


이직, 이사. 둘 다 그 자체로는 후회하진 않는다. 어차피 해야했을 이직과 이사였다.

다만, 좀 더 신중했었어야 했다.

기숙사에서 내쫓긴다고 하더라도 그냥 잠깐 살 집 구하면 되는데,

그거 귀찮다고 덜컥 이런 회사에 들어오다니.

과거의 나에게 꿀밤 한 대 때리고 싶지만, 이사 와서 더 큰 기회를 많이 얻었으니 참고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어찌됐든, 첫번째 이직은 스무스했으나, 두번째 이직은, 글쎄? -ing,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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