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수업기록 - 나의 어린시절
*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진행하는 <동화로 쓰는 생애사> 수업 기록입니다. 학우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오늘은 다들 사진을 가져오기로 했다. 지난 주에 담당자가 무슨 사진을 가져오라고 하면 좋겠느냐 묻길래, 학우들이 설명할 수 있는, 기억이 있는 사진이면 좋겠다고 했다. 발달장애인 수업은 처음이라 나는 하나씩 두들겨 가며 건넌다. 강의개요는 담당자가 이미 짜놨다. 각 강의의 제목이나 컨셉을 잡아둔 것인데 나로서는 부담이 덜해 외려 고맙다고 했다. 나는 이런 강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편은 아니다. 기초적으로 내가 짜놓은 강의안이 있지만 참가자마다 융통성 있게 그때그때 바꾼다. 초등학교 수업의 경우도 똑같은 교안을 다른 교실에 적용할 수 없다. 어떤 교사들은 같은 강의안을 시간까지 딱 짜맞춰 그대로 할 수 있는 모양인데 나는 그게 불가능하다. 참가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다음 내용으로 넘어갈 수 없다. 내가 하는 말에 동의하지 못하는데 다음 이야기를 하면 뭐하나. 강의 전엔 항상 강의를 요청한 사람에게 원하는 게 뭔지 묻는다. 얘기를 듣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인지 판단한다. 담당자가 적극 협조한다면 요청이 온 강의는 대부분 할 수 있는 범위에 든다. 이 수업은 내가 맡아도 담당자의 정보공유와 제안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수업 전에 몇 몇 학우들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인사하자 은혜씨가 제일 크게 인사를 했다. 몇 명이 늦었고 교실에 왔다가 잠깐 나간 학우도 있었다. 지난 주에 내가 좋아하는 것 이야기를 해서 그런지 수업 시작 전에 은혜 씨가 <내 동생은 구름요리사>라는 노래가 좋다는 말을 꺼냈다. 다른 학우들을 기다리며 각자 좋아하는 노래 이야기를 해봤다. 재욱 씨는 여자친구의 팬인 모양이다. 재욱 씨가 여자친구 노래를 좋아한다면서 승민 씨가 자기도 좋아한다고 얘기했다. 나는 학우들에게 “선생님은 아이돌 노래 하나도 모르는데 누가 불러 줄 수 있어요?” 물었더니 수영 씨가 다음에 기타를 가져와서 해주겠다고 했다. 기타 반주가 없으면 노래를 할 수 없고 최선규 아나운서는 원래 기타리스트가 꿈이었다는 정보도 주었다.
수업을 시작하고 각자 가져온 사진을 꺼냈다. 사진 한 장을 골라 무슨 사진인가 잠시 생각한 다음에 학우들에게 보여주고 설명하기로 했다. 제일 먼저 손을 든 건 승민 씨였다. 승민 씨는 손을 들고 발표를 하겠다더니 앞으로 나와 책상 앞에 섰다. 두 손으로 사진을 잡고 사진 설명을 했다. 기어다닐 때 사진이다. 기억이 나냐고 물으니 기억이 난다고 대답했다. 나는 정말 기억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가 안아줄 때, 나를 반겨주니까 좋다는 표현을 했다. 그러면서 내 뒤에 서서 나를 꼬옥 안아주었다. “이렇게요.” 라며 몸으로 설명을 했다. 제일 먼저 손을 든 건 수업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지 기다렸다는 얘기로 들렸다.
은혜 씨는 바리스타 교육을 받을 때 사진을 가져왔다. 제과제빵 학원에서 커피를 배우고 난 뒤 김치, 하며 사진을 찍었을 때 기분이 좋았어요. 라는 완성된 문장으로 말했다. 은혜 씨는 발음하는 게 좀 어려운데 굴하지 않고 기다려주면 정확하게 발음하려고 애 쓴다. 수영 씨는 까페에서 화병을 들고 사진을 찍은 걸 설명했다. 나는 커피 머신에서 나는 소리가 어떻냐고 물었다. 수영 씨는 거침없이 “시끄러워요.”라고 대답했다. 비장애인들의 경우 이런 질문을 던지면 강사가 원하는 대답을 내놓는다. 꾸미고 묘사하려 애쓴다. 중년이상의 학우들인 경우 한 잔의 커피가 만들어지는 소리는 소중하고 값진 것, 자신의 보람에 대해 어필하려 했을 것이다. 수영 씨의 “시끄러워요.”라는 대답에 모두 웃었다. 가장 솔직한 말이다.
수정 씨는 엄마와 청평에 있는 강에 물놀이를 갔을 때 사진을 보여줬다. 말을 하며 늘 부끄러워 입을 가리고 중간중간 말을 멈춘다. 어머니가 수정 씨를 바라보는 눈빛에 사랑이 가득했다. 수정 씨는 지난 주에 관장님이 아버지같아 좋다고 말했다. 아마 수정 씨의 가정은 수정 씨에게 행복을 주는 공간임이 틀림없다. 나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런 집도 있을 것이다.
혜은 씨는 오늘 아침에 기분이 좋아서 울지 않았다는 말로 운을 띄었다. 지난 주에도 그 말을 여러 번 했다. 그 말은 아침에 자주 울었거나, 지금도 아침마다 자주 운다는 얘기 같았다. 나는 어릴 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우는 아이였다. 아침마다 화를 내는 엄마 탓이었겠지만 엄마가 없어도 울었고 있어도 울었다. 엄마는 나에게 저렇게 우니 저년이 집안을 말아먹을 것이라 악담을 퍼부었다. 혜은 씨가 “아침에 울지 않았어요.”라는 말을 할 때마다 나는 어린 내가 생각나서 울적해졌다.
채영 씨는 어린이집에서 국립묘지에 참배 갔던 이야기를 했고, 국립묘지가 어떤 곳인지 묻자 죽은 사람들이 묻혀 있는 곳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나라를 위해 싸우거나 일하다 돌아가신 분들이 묻혀 있는 곳”이라고 덧붙였는데 채영 씨가 내가 한 말을 그대로 따라 하며 다시 설명했다.
동선 씨는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지적장애 티가 안 날 것 같다. 다른 장소에서는 더 성숙한 모습을 보일 것 같기도 하다. 학우들과 같이 공부하는 과정에 맞춰서 잘 설명하려고 애쓰는 듯 하다. “지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청계산에 아버지와 같이 놀러갔던 기억이 납니다.”라고 말했다. 비둘기를 쫓아가다가 엄마를 잃어버렸을 때라고 했다. 나는 놀라며 엄마를 어찌 다시 찾았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길을 잃어버리면 다른 데로 가지 말고 그 자리에 있으라”고 늘 말해줬고 그 말을 그대로 따랐더니 엄마가 다시 돌아왔다고 말했다. 동선 씨는 자폐가 아니고 지적장애인데, 다운증후군으로 보인다. 글이나 그림을 그릴 때 강사의 눈치를 살피는 것으로 보아 다른 학우들보다 훨씬 더 사회화가 이루어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사실 다른 교육을 받아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기현 씨는 외모상으로는 전혀 발달장애 티가 나지 않는다. 발달장애인들은 어릴 때부터 상호작용이나 의사소통을 하지 못해 표정이 굳어져 버려 성인이 된 뒤 외모로도 티가 나는 경우가 많다. 더러 뇌신경의 장애로 안면의 근육이나 특정 기관이 변형된 경우도 있는데 기현 씨는 비장애인처럼 보인다. 부모님과 어디 공원에 놀러간 사진을 보이며 설명하는데 지난 시간과 마찬가지로 말수가 적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여자친구 사진을 보여줘도 되냐고 물었다. 나는 기현 씨의 여자친구 사진을 보여준다는 줄 알았는데 걸그룹 “여자친구”사진을 보여주겠다는거였다. 기현 씨는 벽에 달아둔 캔버스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문방구에서 파는 것 같은 여자친구의 사진첩을 보여줬다. 내가 손을 뻗자 홱 가로챘는데 사전에 묻지 않고 만져서 미안하다고 바로 사과했다. 이렇게 즉각적인 반응이 나오면 차라리 속 시원하다. 기현 씨는 여자친구의 사진을 만지는 걸 싫어하는 것 같았지만 자랑은 열심히 했다. 평소 여자친구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지 학우들과 반말로 누구누구가 안경을 썼다는 얘기를 하며 웃었다.
재민 씨는 평소 “어”와 “응”의 중간발음으로 긍정하는 대답만 하고 다른 단어를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해는 가능하지만 소통은 거의 안되고 글쓰기도 할 수 없다. 초록색 점퍼를 입은 재민 씨 옆에 비슷한 또래의 남자아이가 서 있다. 나는 옆에 있는 사람을 짚으며 이 사람은 누구냐고 물었다. 재민 씨는 어, 어. 라고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다시 “형이예요?” 라고 물었고 재민 씨는 어. 어. 라고만 대답했다. 내가 다시 “형아?”라고 물으니 어. 어. 하다가 짧게 “엉아.” 라고 대답했다. 누가 사진을 찍어줬냐고 물으니 “음마” 라고 대답했다. 나중에 담당복지사에게 오늘 처음으로 단어를 발음했다고 말했더니 담당자가 깜짝 놀라며 자기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조금이라도 안 하던 일이 이루어지는 것 같다.
발표한 내용을 기반으로 글을 썼다. 은혜 씨는 고유명사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재능이 있어보였다. 계속 살펴볼 일이지만 복잡한 기관명, 예를 들어 “한국예술직업전문학교”라는 단어와 거기서 바리스타 교육을 받을 때의 사업명을 정확하게 종이에 적었다. 보고 온 나도 지금 기억이 잘 안 난다. 동사나 형용사의 활용은 단조롭고 어휘도 몇 개 안되지만 한 번 말해준 것은 바로 바로 습득해 활용하는 능력도 있다. 다른 사람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단어의 개수를 늘리는 일은 쉬운 일 아닐까. 브리오슈를 설명하는 은혜 씨에게 브리오슈가 무슨 빵이냐고 물으니 “눈사람 같은 빵이예요” 라고 두 어번 반복해서 설명해줬다. 타인의 직유법을 모방하는 것 같은데 다음 수업에는 직유로 말을 걸어봐야겠다. 최근에는 복지관에서 말을 잘 안 한다고 했는데 수업 중에는 활발하게 얘기를 잘 했다.
그림을 그릴 때 보면 기현 씨는 집중력이 금방 떨어지지만 수영 씨는 화면을 꽉 채우고 포스터처럼 진하게 색칠을 다 해서 화면을 가득 채운다. 승민 씨는 어두운 밤을 파랑색으로 칠했고 사진의 흰 배경도 파란색으로 칠했다. 벽지의 무늬를 부각시켜서 그렸고 그 부분을 따로 설명했다. 말하는 게 유창하고 발표력도 좋다. 승민 씨가 다른 때에도 말할 기회가 많을까 궁금해졌다.
수정 씨는 글을 잘 쓴다. “경련이 있지만 참고 있다.”, “지금 나는 성숙하게 많이 컸다. 내가 크고 점점 어른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라고 적었길래 청평의 강에 놀러갔을 때 강 주변의 느낌에 대해서만 따로 적어달라고 종이를 한 장 더 주었다. 수정 씨는 부끄러워서 입과 얼굴을 자꾸 가리더니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내가 청평에서 느낀 건 파도는 손을 간지럽피우듯이 스쳐지나가고 햇빛은 마치 무대의 조명같이 눈이 부신다. 나에겐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나는 수정 씨에게 “시인이 될 수도 있겠다”고 말했고 오늘 수정 씨가 쓴 거 사진 좀 찍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쑥스러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업이 다 끝나고 난 뒤 클리어파일에 각자의 결과물을 정리하는데 은혜, 동선 씨는 직접 정리를 다 하고 갔다. 혜은 씨는 나갔다 들어와서 클리어파일에 자기 글과 그림을 다 넣은 다음 의사도 집어넣고 인사도 하고 퇴장했다.
담당복지사와 오늘 수업에 대해 잠시 얘기하고 있는데 누가 뒤에서 나를 쓰윽 끌어안았다. 두 손이 가슴 아래에 와 묶이길래 깍지낀 손을 잡은 채로 복지사와 이야기를 조금 더 했다. 승민 씨였다. 나는 뒤돌아서 승민씨에게 팔을 벌렸다. 승민씨가 다시 나를 꼭 안아주며 선생님 다음 주에 또 만나요. 라고 말해주었다. 나도 두 손을 흔들며 잘 가라고 인사를 했더니 승민 씨가 손가락 하트를 보여주더니 머리 위로 하트를 만들며 선생님 사랑해요. 라고 해줬다. 나도 승민 씨를 따라했다. 복지사 샘과 자원봉사 선생님들에게 인사를 하고 먼저 교실을 나왔다. 집에 오는 내내 사랑한다고 말해준 승민 씨 생각을 했다.
스킨십을 좋아하는구나. 살면서 많은 사람들과 체온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네. 나도 그렇고, 승민 씨도 그렇고.
2018년 5월 16일의 일을 18일에 적다.
기록자 : 강사 이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