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사이가 안 좋은 요즘이지만 간단한 기록은 남기고 싶었다. 사진의 비중은 높이고 정보값은 낮춘 일종의 포토 에세이.
1. 목적지는 안면도. 뚜벅이 혼자 여행자에게 아주 우호적인 곳은 아니다. 대중교통이 열악하고 관광지간 거리가 멀어 택시비가 많이 든다. 하지만 이 여행에서 나의 최우선 순위는 '바다를 맘껏, 질리도록 본다'이기에 괜찮겠지 싶었고 실제로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숙소 / 카페
2. 숙소. 밧개해변 근처의 작은 펜션 2층 방에 묵었다. 큰 기대는 안 했는데 그만하면 만족스럽다. 대충 있을 것 다 있고, 사소한 단점들이 있지만 내 경우 크게 걸리적거리지 않고. 바로 옆에 괜찮아 보이는 작은 카페가 있다는 점도 좋았다(여행지에서 식당은 안 찾아도 카페 리스트는 확보하는 편). 펌킨 치즈케이크를 이틀 연속으로 먹었다.
3. 해변(1). 밧개. 숙소 근처의 조용한 해변이다. 첫날은 거의 여기서 시간을 보냈다. 이날은 오전에 비가 오다가 오후에 갠 날. 비는 그쳤으나 안개가 자욱한 상태였다. 해무로 양 끄트머리가 가려지면서, 끝이 보이지 않게 되자 오히려 훨씬 더 넓은 듯한 착각이 들었다.
3-1. 그리고 안개가 서서히 흩어진다. 하늘색은 아닌데 회색이 많이 옅어진 상태. 햇빛이 강해지면서 바다 표면에서는 본격적으로 윤슬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서해 특성상 바닷물 색은 많이 푸르지 않다. 이 특수한 빛 아래에서 바다는 거의 은색에 가깝게 빛났다.
3-2. 그다음엔 마침내 제법 푸른 하늘.
3-3. 사실 서해를 가 본 경험이 일천하다. 그래서 평범한지 특별한지 구분 안 되는 돌의 불그스름한 색깔, 조개껍질이 놀랍도록 많이 함유된 모래사장 같은 게 외국에 온 것처럼 새로웠다. 밧개는 자갈이 많아 돗자리 깔고 앉기엔 불편한데, 그 대신 땅 사진을 생각보다 많이 찍었다.
3-4. 석양 사진은 구름과 타이밍 미스로 거의 건지지 못했다. 사실 내 카메라로는 해 잘 찍기가 어렵다. 그래도 기다리면서 해 지기 전의 갯벌 공기는 많이 들이마셨다.
4. 해변(2). 둘째 날은 꽃지에 갔다. 밧개보다 넓고(4km 정도 된다고 한다) 자갈도 적어서 백사장다운 백사장의 널찍한 맛이 느껴졌다. 주말을 맞아 갯벌체험을 온 가족, 친구, 연인들이 제법 보였다. 썰물 때라 밀물이면 섬이 되는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로 가는 길이 드러나 있었다. 다녀온 후 돗자리를 깔고 파도 구경. 음악 듣기. 비슷한 파도 사진 찍다가 포기하기. 다시 찍기.
4-1. 파도가 꽤 빠른 속도로 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할미 할아비 바위로 가는 길이 점점 좁아지고, 갯벌에서 놀던 아이들도 저도 모르게 뒤로 밀려난다. 좀 이른 저녁을 먹고 다시 돌아올 무렵에는 물이 다 차서, 두 바위로 가는 길이 완전히 사라졌다. 아까 내가 정말로 저기까지 걸어갔었단 말이야? 왜 이런 건 알고 있어도 신기한지 모르겠다.
4-2. 석양. 꽃지의 석양은 촬영 명소로 유명하다. 이 날도 할미 할아비 바위 쪽은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 십여 대가 쪼르륵 늘어서 있었다. 구름이 꽤 있어서 누가 봐도 감탄할 석양은 아니었지만, 이 상황에서도 뭔가 찾아내는 게 사진가의 능력이겠지. 나는 꽤 헤매다가, 아주 잠깐 구름 밖으로 해가 나왔을 때 찍은 바다에 만족하기로 했다.
5. 안면도의 꽃들. 꽃지해변 옆에 커다란 축제 전시장이 있지만 내가 갔을 때는 다음 행사를 준비하는 휴장기였다. 대신 밧개해변의 들꽃을, 길가 화단의 양귀비를 찍었다. 3년 전 마드리드 교외로 차를 타고 나가면서 양귀비 들판을 본 이후로 5~6월 꽃으로는 양귀비가 제일 좋다.
6. 이물질. 꽃지는 좀 덜했지만, 밧개에서는 버려진 스티로폼 덩어리가 여기저기 보였다. 세상일을 잊고 싶어 바다에 왔더라도 미세 플라스틱 문제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 파도에 마모되어 언뜻 보면 자연의 일부처럼 보인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7. 혼자 바다 가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텐데 두 번이나 취소하고 마침내 성공했다. 파도를 보고 있지 않을 때는 실망과 걱정과 고민 때문에 애도 많이 끓였지만 그건 다른 날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