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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다 Mar 14. 2022

토머스 존스와 나폴리의 어떤 벽

창작자는 가끔 자기도 모르게 혁명을 한다

토머스 존스, <나폴리의 건물들>




가끔은 뜻밖의 작품이 창작자의 위상을 결정짓는다. 코넌 도일은 셜록 홈스 시리즈보다는 역사소설 작가로 기억되길 원했었고, 라디오헤드도 생각보다 너무 떠 버린 히트곡 'Creep'을 싫어하게 됐다고 한다. 화가들 중에서도 본인이 예상치 못했던 작품으로 역사에 남겨진 사람들이 있다. 누구에게도 보여 줄 생각 없이 혼자 끄적끄적 그린 몇 점이 2세기 후 한 미술평론가에게 발견되면서 갑자기 유명해진 화가 토머스 존스 같은 사람들이다.



1742년생인 토머스 존스는 웨일스의 한 중소 귀족 가문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집안의 재산은 모두 장남이 물려받아 가문의 부를 유지하고, 나머지 자식들은 모두 스스로 먹고살 길을 찾아야 했던 시대다. 여자라면 좋은 혼처를 찾는 게 급선무였고, 남자라면 성직자가 되거나 해군에 입대하는 편을 택하곤 했다. 존스는 (훗날 자서전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별로 신앙심이 깊은 편이 아니었으나, 옥스퍼드대 등록금을 대 주겠다는 외삼촌의 제의를 받아들여 일단 성직자의 길을 택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외삼촌이 세상을 떠나면서 학비 지원이 끊겼다. 자유가 된 존스는 진로를 바꿔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그림을 그려 보기로 한다. 영국 풍경화계의 대부였던 리처드 윌슨에게 사사한 후 그는 풍경화가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토머스 존스


당시 전 유럽의 화가들에게 꼭 가보고 싶은 나라를 꼽으라고 한다면 십중팔구 이탈리아를 꼽았을 것이다. 이탈리아는 가장 유명한 화가들이 태어난 땅이자, 가장 인기 있는 배경이었다. 볼 것도, 배울 것도, 그릴 것도 많은 곳. 그리고 돈벌이도 꽤 잘 되는 곳. 당시는 유럽의 귀족 자제들이 교육 목적에서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각국을 여행하는 '그랜드 투어'가 한참 인기였는데, 현지에서 본 아름다운 풍광을 간직하기 위해 화가를 고용하는 여행객이 적지 않았다. 웨일스와 잉글랜드에서 몇 년간 활동한 존스도 그래서 30대 중반의 나이에 이탈리아행 배를 탔다.


그는 먼저 이탈리아 미술의 중심지이자 그랜드 투어의 핵심 명소 중 하나였던 로마에서 몇 년간 머무른 후 남쪽 나폴리로 이동했다. 나폴리도 그랜드 투어 여행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로마처럼 쓸쓸한 장엄함이 깃든 고대의 폐허는 없었지만(나폴리 사람들은 새 건물을 지을 때 고대 신전의 기둥이나 조각상 머리를 가져다 알뜰하게 활용하는 버릇이 있었다), 대신 눈부시게 푸른 바다, 거대 활화산, 기암절벽 등 아름답고 신비로운 자연이 있었다. 존스도 나폴리의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는지 여러 작품에서 바다를 담았다. 로마와 나폴리에서 총 7년간 머물렀던 존스는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소식에 고향으로 돌아갔고, 이후 형이 사망하면서 영지를 물려받았다. 그의 말년은 화가라기보다는 지방 귀족의 삶이었다.


존스의 '평범한' 풍경화들. <강이 있는 고전적 풍경>(위), <나폴리 만>(아래).



로마에서건 나폴리에서건, 토머스 존스의 화풍은 당대인의 취향과 가치관을 벗어나는 법이 없(던 것처럼 보인)다. 큼지막한 화폭 속 탁 트인 시야, 멋진 나무, 호수나 강, 그림이 너무 심심하지 않도록 작게 그려진 농부와 목동(혹은 신화나 서사시 속 주인공들). 그의 고객들도, 화상들도, 후대의 평론가들도 모두 그가 이름만큼이나 튀지 않는 취향의 소유자라고 생각했다. 사망 후 한 세기 반이 흐른 1950년대에 한 미술 평론가가 갑자기 그의 유품에 포함되어 있었던 소품 유화 몇 점에 주목하기 전까지는.

나폴리를 소재로, 종이에 그렸다. 제목은 한결같이 건조하다. <나폴리의 벽>, <누오보 성의 북동쪽 면과 나폴리의 건물들> <나폴리의 지붕들>... 작은 것은 겨우 엽서만 하다. 고객의 취향이나 시장의 트렌드를 감안하지 않은, 연습 혹은 여흥의 목적으로 그린 그림들임이 분명했다. 그런 작품들이 존스가 땀 흘려 그린 어떤 '대작'도 끌지 못한 후대의 관심을 샀다.


<나폴리의 벽>


그럴 수밖에. 나도 <나폴리의 벽>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이 그림은 그저 눈앞의 벽을 있는 그대로 그렸다는 인상을 준다. 하늘과 옆 건물 또한 아무런 공간감을 주지 않은 채 기하학적으로 그림을 분할할 뿐이다. 모두가 가끔은 정면으로 마주하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종류의 풍경이라고나 할까. (내가 나폴리에 처음 갔을 때 묵었던 숙소의 창도 딱 이런 벽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아서 커튼을 치고 날씨를 확인할 때만 가끔 걷었다.) 아름다움에는 어떤 공식 같은 것이 있다고 믿었던 18세기 풍경화가들 중 누구도 이처럼 남루한 벽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았다. 그런 걸 '본다'는 생각이 아직 너무도 낯설었다.


그러나 존스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벽을 계속 응시했고, 아래로 떨어지는 물자국까지 세심하게 묘사하는 편을 택했다. <나폴리의 벽>만큼 급진적이진 않아도, 다른 그림들 또한 현대적이라는 인상을 받기엔 충분하다.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려 너무 애쓰지 않고, 풍경에 신화나 서사시 같은 양념을 치려 하지도 않고, 다소 건조한 붓질로 18세기 나폴리의 현실을 무덤덤하게 담아냈다. 이 '나폴리 시리즈' 덕분에 존스는 '몬드리안 같은 평면성'을 과감히 선택하고, '20세기 추상회화를 예견'한 화가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현재 영국의 대표적 미술관인 내셔널 갤러리가 <나폴리의 벽> 등 존스의 작품 세 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고향 웨일스의 국립 박물관은 <나폴리의 건물들> <누오보 성의 북동쪽 면과 나폴리의 건물들> 등 존스의 작품을 다수 소장하고 있다.



<누오보 성의 북동쪽 면과 나폴리의 건물들>/<나폴리의 건물들>



이처럼 웨일스에서 그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인지 <나폴리의 벽>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나왔다. 웨일스 출신의 화가이자 미술 기고가인 마이클 톰린슨은 어느 글에서 이 작품이 개인적인 사연에서 비롯된 종교적 감정을 표현한 그림이라는 가설을 제기했다. 두 개의 창문(과 실존하지는 않지만 위치를 잡아볼 수 있는 세 번째 창문)은 삼위일체를 상징하고, 가운데 창문에 걸려 있는 빨랫감은 예수를, 창문에서 바닥 쪽으로 향하는 물자국은 예수의 피가 흘러내리는 모습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마침 그림이 그려진 시점은 존스의 스승 리처드 윌슨과 가까운 친구가 사망한 해이기도 하니, 가까운 사람들을 상실한 후 종교에 이끌린 존스가 벽 그림을 가장해 자기만의 신앙심을 비밀스럽게 표현했다는 주장이다. 이 가설에 따르면 존스의 놀라운 평면성 또한 '미래의 예견'이 아니라, 사물을 입체적으로 그리는 데 별 관심이 없었던 중세 거장들의 평면성을 '회상'했을 가능성이 높다.

 

두초 보닌세냐,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 베네치아 산마르코 대성당의 같은 주제를 다룬 모자이크. 로마 병사의 창에 찔린 지점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다.



말년의 존스는 펜서릭(Pencerrig)의 지주로 편안한 삶을 살았다. 아마 작은 나폴리 시리즈는 (이상화된 그림들과 달리) 실제 자신이 살았던 그 시절의 추억, 방문객에게 보여줄 만한 사진첩 혹은 가끔 꺼내 보는 옛 일기장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1798년에 출간한 자서전인 <펜서릭 사람 토머스 존스의 회고록>을 작성할 때도 가끔 들춰보지 않았을까. 1798년이라면 유럽 귀족 가문의 둘째, 셋째, 막내아들들이 예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삶의 경로에 투신하던 시기다. 프랑스 대혁명이 1789년에 시작되면서 유럽에 정치적사상적으로 큰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프랑스혁명이 내건 자유, 평등, 박애의 기치는 다른 시대였다면 평범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를 수많은 사람들을 혁명 정신의 신도로 각성케 했다. 나폴리의 재능 있는 차남과 삼남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은 국왕 페르디난도 4세가 프랑스 군 피해 도망친 틈을 타 1799년에 나폴리 공화국을 설립했지만, 고작 6개월 후 왕정복고가 이뤄지면서 형장의 이슬로 변했다. 웨일스의 차남 토머스 존스는 우연히 자신의 장르에 작은 혁명을 일으켰지만, 스스로는 그 의미를 결코 알아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만큼 안전한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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