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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뚝이샘 May 10. 2021

놀이터, 친구들은 아들에게 계속 술래를 시켰다.

하교하는 요한이의 발걸음이 가볍다. 

엄마가 휴직을 하고 집에 있지만

코로나로 인해 누굴 초대해 놀기도 부담이 되는 시국인지라 

하교 하고 나면 늘 집으로 왔는데,

오늘은  놀이터로 가기 때문이다. 

정말 오랜만의 놀이터 나들이다.

그것도 요한이가 처음으로 친구들과 약속을 잡아 가는 날이었던지라

나로서는 기쁘고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놀이터에 가보니 아이들 넷에

엄마는 나 뿐이었다. 

다른 세명의 친구들은 단지 내 놀이터로 혼자 걸어 왔다.

요한이를 제외한 다른 셋은 꽤 친해보였다. (자주 셋이 놀이터에 모여 놀곤 했다고 한다)

요한이는 처음 친구들과의 놀이터 나들이에 무척 신나했다.

시소타기부터 그네타기까지 둘씩 짝을 이루어 하니 균형이 맞고 보기에도 좋았다. 


술래잡기를 시작하고부터 문제가 생겼다.

처음에는 가위바위보로 술래를 정했다. 

처음 술래가 된 친구에게 요한이가 잡혔다.

그런데 요한이가 술래가 되고부터 술래잡기의 규칙이 바뀌었다.

친구들은 "이 선 넘어오면 안돼! 여기는 술래가 못 잡는데야!"라는 

도저히 잡을 수 없는 규칙을 만들어 버렸다. 

또 겨우겨우 잡았더니 "나 목숨 두개야. 그러니까 한번 더 잡아야 돼!"라고 우겼다. 

불합리한 규칙에, 계속 술래를 하며 헉헉대는 요한이가 안쓰러웠고 나는 마음이 상했다.

아주 많이.

그냥 집으로 데려오고 싶은 마음도 생겼고 

개입해서 규칙을 정리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둘다 하지 않았다. 

집으로 데려온다면 당장 내 속은 편하겠지만 요한이로서는 친구들과의 놀이시간을 뺐기는 것이니 싫다 할 것이 분명해보였다.

또 내가 개입해서 규칙을 정리해준다면 당장은 편할 수 있지만, 요한이로서는 불편한 상황 속에서 대처력을 키울 기회가 그만큼 줄어들 수 있다.

엄마가 늘 함께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학교 중간놀이 시간, 점심 시간 놀이 가운데 똑같이 계속 술래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고, 그 때마다 엄마가 구해줄 수는 없는 법이다. 

불편하고 속상했지만, 참고 기다렸다.


한 네번, 다섯번쯤 불리하고 어이없는 규칙속에 어거지로 술래를 하고서야, 드디어 요한이가 말했다.

"나 노잼. 노잼이야."

불합리한 상황에서 불만을 표현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그래야 상대방의 잘못된 행동을 멈추게 하고, 자신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말 하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리는 것으로 상대편을 바꾸기 어렵다. 오히려 더 만만히 볼지도.

또 욱해서 화내고 소리를 지른다면 친구들 사이에서는 아이를 배제하고 자기들끼리만 놀려고 할지 모른다.

술래를 계속하는 게 불편하고 싫다는 것을 완곡하게 표현한 요한이의 한마디에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그런데 친구들의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야 오늘만 니가 술래 해. 너가 달리기 느리잖아."

"요한아 이번 한번만 더 해. 한번만 더 술래 하고, 그 다음에는 가위바위보 하자."

요한이가 한 번 더 술래를 하고서야, 다른 친구가 술래가 될 수 있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요한이에게 물었다.


"아들, 오늘 어땠어?"




"재밌었어."




"요한이가 계속 술래 하는데 괜찮았어?”




"아니. 쫌... 쪼끔 마음 상했어."




"그러게. 가위바위보로 술래를 정한 게 아니라 그냥 요한이에게 술래하라고 하니까, 엄마도 마음 상하더라."




"어. 내가 노잼이라고 했는데도 계속 그래."




"그래도 그말 한 건 요한이가 잘한거야. 가만히 있으면 친구들은 모르니까 그렇게 말을 해야지.


그리고 요한아. 요한이가 앞으로 밥 많이 먹고 키 크면 좋아져. 친구들에 비해서 요한이가 키가 작고, 그래서 달리기도 늦잖아. 키 크면 좋아지니까, 밥 많이 먹자!"





집에 와서 저녁밥을 짓는 내내 두가지 의문이 들었다.


내가 개입하지 않은 건 잘한 일일까?


다음 번에 또 놀이터에 가자고 하면 똑같이 가야할까?


요한이가 오랜만의 친구들과의 놀이에 재미있다고는 했지만


소외감도 겪을텐데


그걸 곁에서 지켜보는 게 맞는 건지,


그걸 감수하고 계속 놀이시간을 갖는게 맞는 것일지 


뚜렷하게 답이 나오질 않았다.




그런데 밥 한공기를 뚝딱하는 요한이를 보고 알았다. 


(참고로 요한이는 입이 짧아도 심하게 짧아서 조금만 딱딱해도 뱉어낸다. 편식이 심할 뿐만 아니라, 먹는 양도 작아서 아이스크림도 한개를 다 먹지 못하고 과자도 한봉지를 못먹는다.)


그런 녀석이


키크려면 잘먹어야 한다고 스스로 깨달아 다 먹으니


오늘 놀이터에서 술래를 반복한 경험이 


요한이에게 나쁘지만은 않은 것이다.




만약 또 다시 놀이터 약속을 잡는다면

두말 않고 따라나서야겠다.


그리고 오늘처럼 한걸음 뒤에서 응원하며 아이를 지켜봐줄 것이다.


불안하고 속상한 마음으로 아이 손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요한이가 커가는 동안 남자아이들 사이의 기싸움이 밀리는 일, 그래서 무시당하는 일은 또 겪을지 모른다. 


그러나 불안은 엄마인 나의 것이고, 속상한 마음을 달래는 것 또한 내 몫이다.


좋은 경험이든 안좋은 경험이든 경험을 통해 요한이는 배우고 자라날 것이라 믿는다.


꼭 행복과 만족만이 아이를 자라게 하는 것은 아니다. 


소외감도 아프지만 이겨낼 가치가 있다. 


엄마의 믿음과 사랑, 지지와 격려를 받으며 잘 이겨내나가길 바란다.


불안을 이기는 힘은 엄마의 믿음이고, 엄마가 아이를 믿어주는 딱 그만큼 아이의 자존감이 자란다.






불안을 이기는 엄마가 아이의 자존감을 키운다


<초등 자존감 수업>의 부제가 된 이 문장은


사실은 기쁨이를 키우며, 불안할 때마다, 속상할 때마다 


제가 저에게 한 말이고 위로였습니다. 


사실 안 먹어서 작은 거, 놀이터에서 소외당하는 건 모두 첫째를 키우며 겪은 일이에요.


첫째도 반에서 가장 작고 마른 아이였는데 지금은 제법 컸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때 키가 평생 키가 아니고 


초 1때 친구관계가 계속 가지 않는다는 것도 다 알고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둘째를 키우며  마음이 상하지 않고 불안이 없어지는 건 아니더라고요. 


여전히 애가 닳고 속상합니다.


하지만 


첫째가 그랬듯 둘째녀석도 


엄마가 믿어준 만큼 

마음 단단한 아이로 자랄 것을 믿습니다.


오뚝이샘의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heW5M9xuXDs57xZASiBJKQ

오뚝이샘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jiiyoung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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