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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 Aug 23. 2023

모순된 자의 선택

영화 '오펜하이머' 속 인물들의 선택과 책임


*이 리뷰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오펜하이머'가 개봉하였다. 개봉 전부터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이름과 함께 많은 관심을 불러 모왔던 이 영화는 3시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가지고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렇게 실존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로 다루게 될 때 가장 까다로운 건, 창작으로서의 표현이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실존 인물을 영화로 표현한다는 건, 그 인물이 가지는 역사적 의의나 사회적 영향력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함이다. 그렇기에, 그의 내용을 다룰 때는 특히 창작자의 주관이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될 경우, 영화의 후반부에서 해당 인물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주며 박수를 치는 등장인물들이 등장한다거나,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부추기는 느낌을 들게 만들 수 있다. 실존 인물을 영화로 표현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객관적인 시선이다. 이번 '오펜하이머' 또한, 그러한 기준에서 벗어나기는 힘든 영화라 할 수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영화 '오펜하이머'는 역사적 진실을 이야기의 밑에 깔아 두면서도 영화적 창작의 표현 또한 놓치지 않았다. 이 영화를 관람하며 느꼈던 이질적인 감정은 '논픽션을 픽션처럼 만들었다.'에 있다. 이러한 느낌을 받게 한 이유 중 하나가 이 영화의 플롯에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나처럼 '플롯의 마술사'라는 별명을 가지는 놀란 감독답게, 이 영화에서도 단순한 플롯을 가져가지 않는다. 이전 영화들과 같이 서로 다른 시공간의 이야기를 병렬적으로 나열하며, 서로 다른 세 개의 이야기를 교차로 엮어내고, 그마저도 각각의 독립된 이야기들을 편집을 통해서 섞어냄으로써, 훨씬 더 미래의 이야기를 마치 오늘 겪는 것처럼 만들어내거나, 바로 내일 있을 일을 한 달 뒤에 일어나는 것처럼 만들어내는 기이하고도 신선한 구도를 연출해 낸다. 이 때문에 다소 지루할 수 있는 인물들 간의 대화 장면이 일종의 육체적 액션처럼 느껴지게끔 만들고 있다.


(예시)


(오펜하이머의 청문회) (1) (5) (8) (3).....


(오펜하이머의 과거 ~ 트루먼 대통령 면담) (1) (2) (3) (4).....


(스트로스의 청문회) (1) (4) (7) (5).....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오펜하이머는 '핵폭탄의 창시자', '원자 폭탄의 아버지' 일 뿐, '불을 선사 해준 자의 고통'에 대해서는 미처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한 측면에서 '아메리 프로메테우스' 책을 원작으로 제작된 이번 영화는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의 모순되고 흔들리는 심리 묘사를 객관적으로 묘사함과 동시에, 새로운 플롯을 접목시킴으로써, 또 한 번의 놀라운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이번 영화의 원작이 되는 책이 바로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다. 신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불을 선사한 '프로메테우스'는 남은 평생을 기둥에 묶여 새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게 된다. 새에게 쪼아 먹힌 간은 시간이 지나 회복되지만, 또다시 새가 날아와 그의 피부를 찢고 간을 먹게 된다. 긴 시간 동안 고통을 겪으며 지낸 뒤에 짧은 시간 동안 다시 그 상처를 회복하고, 또다시 긴 시간 동안 고통을 받으며 살아야만 했던 프로메테우스의 삶이, 마치 'J.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삶과 닮은 듯하다.


 오펜하이머는 주변의 우려와 만류에도 자신의 행동이 전쟁의 악연을 끊을 것이라 여겼고, 자신과 같은 과학계 종사자들은 그저 무기만 만들면 되며, 그 이후에는 정치인에게 맡겨야 된다 생각한다. 그리고, 마침내 원자 폭탄의 실용 가능성을 입증해 내는 순간, 그의 직업인으로서의 운명이 종착점에 다다르게 된다.


 사회적, 정치적 환경에 의해 원자 폭탄을 만들어야만 했던 오펜하이머는 마지막 남아있던 두 개의 폭탄들이 자신의 손에서 떠나간 후로 자신의 모든 것을 세상에 드러내야만 했다. 온 세상이 그의 이름을 알게 됐고, 신문에는 그의 사진과 초상화가 실려 미국 전역을 뒤덮게 됐다. 그리고, 인류는 오로지 그에게 돌을 던지게 됐다.


출처 - 네이버


 '아인슈타인'이 그에게 했던 말처럼, 세상은 인류에게 원자 폭탄을 선사한 오펜하이머를 가만히 두지 않으면서도 시간이 지난 뒤에서야 그에게 훈장을 주는 아이러니한 상황들이 이어지게 된다. 긴 시간 동안 이어져온 오펜하이머에 대한 질책과 압박이 몇 십 년이 지난 후에서야 '훈장'이라는 이름의 반창고로 가려지면서 그에게 억지로 웃으라고 말한다.


 훈장을 받으며 웃음을 짓는 오펜하이머의 얼굴에는 온전한 의미의 표정이 존재하지 않았다. 훈장을 받았다는 기쁨도, 핵폭탄을 만들었다는 죄책감도,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도, 세상에 대한 한탄도 없었다. 그를 옭아매고 때리고 상처 입힌 세상은 이미 그를 버렸다. 그 훈장으로 그의 상처를 가려줄 뿐이다. 이제 세상에는 '폭탄을 만든 선지자'는 없다. 그저 그 존재가 가져다준 '폭탄'만이 세상을 뒤덮고 있을 뿐이다.


 


개인의 모순된 선택



 인간은 삶을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하게 된다. 인간은 1초, 1분, 한 시간, 하루, 일 년, 평생 매 순간마다 선택이라는 행동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이끌어간다. 그 선택은 단 1초 후의 상황을 바꿔놓기도 하며, 어떠한 선택은 그의 환경을 평생 동안 바꿔놓기도 한다. 선택이란 삶이고, 선택이란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굴레다. 또한, 인간은 살아가면서 '선택을 하는 행위'에 대해 명확한 지각을 가지지 못한다. 태어나면서 자라오는 모든 순간에도 선택이라는 건 필수불가결한 현상일 뿐이다.

 하지만 인간의 모든 선택은 그때 당시의 감정과 신체적, 정신적 컨디션에 따라서 달라지기 마련이며, 그에 대한 결과 또한 달라지게 된다. 그렇기에 인간의 과거와 현재가 다른 것이고, 현재와 미래 또한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모든 선택의 굴레 속에서 모순된 태도를 보이게 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들 중 가장 모순되고 혼란스러운 인물은 오펜하이머다. 그는 유럽에서 학생으로 지내는 시절부터 트리니티 실험을 진행하고 그 후 모든 책임을 떠받들게 될 때까지, 그 어느 순간에도 자신만의 온전한 선택을 내리지 못하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한 순간 몰아치는 욕망에는 그토록 빠르고 능동적이었던 그는 그 선택의 대한 미래를 그리지 못한 탓에 무거운 족쇄를 만들게 됐다. 또한 프로젝트에 대한 과학적 인식과 견해는 일관되면서도, 인간에게만큼은 무르고 어리숙한 태도를 보이게 된다.


출처 - 네이버


 그가 내리는 모든 선택의 결과들은 온전하고 확고한 길을 이어가지 못한다. 그가 그 선택을 내렸을 당시의 심리적 상태처럼, 그의 선택들은 혼돈하고, 연약하고, 길을 잃어 수십 갈래로 뻗어 나가게 된다. 이는 마치 폭탄이 터져 거대한 후폭풍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았고, 그 후폭풍에 휩쓸린 인물들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서야 그때의 내가 한 모든 것들을 후회기 시작하면서 자신을 부정하고 두려워하게 된다.


 인간은 그 순간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야기할지에 대해 전혀 예측하지 못한다. 그 불완전함과 불확실성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이며, 그 본성이 유지되는 것이야말로 인간성을 유지하는 것임을 영화가, 오펜하이머가 보여주고 있다. 자신 스스로도 그동안 무엇을 위해 행동했는지 불분명해하던 그였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에게 헌신하던 동료들과 아내를 믿으며 그 불확실함의 중심부로 걸어 들어갔다.

 



피가 묻어있는 손



 세상을 뒤바꿀 여정의 끝에, 오펜하이머가 그린 미래는 오지 않았다. 그 끝에는 발을 딛고 있는 땅에 위에 핵 미사일이 세워져 있고, 무수히 많은 미사일들이 그의 머리 위를 날고, 그가 바라 보는 지평선 너머에서 하늘을 뒤덮는 불기둥이 솟아오르는 광경이었다. 오펜하이머는 그런 일이 벌어지리란 걸 몰랐던 게 아니다. 그는 수 없이 많은 시간 동안 자신의 귓가를 때리는 진동 소리를 들었고, 자신의 눈앞에서는 폭탄의 위력으로 순식간에 모든 것이 사라지는 환상을 마주했다. 하지만, 그는 눈을 감음으로써 이를 외면했다. 그것은 타인이 자신에게 보내는 우려의 목소리가 만들어낸 착각이었을 뿐이고, 나약했던 당시의 자신이 만들어낸 정신적 스트레스뿐이라 믿었다. 그는 그렇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렇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너무나도 모순적이고 혼란스러워서 스스로가 스스로의 고민을 회피했다.


출처 - 네이버


 남아있던 두 개의 핵폭탄이 자신의 손에서 벗어남으로써 그의 불안은 시작된다. 군 관계자들이 언급했던 '핵폭탄의 위력을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 전쟁을 끝낼 방법이다.'라는 의견은 오펜하이머 본인 역시 동의하던 부분이었다. 정말로 그 이후에는 전쟁이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이 보지 못한 순간에 일본에는 폭탄이 떨어졌다. 그리고 전쟁이 끝다. 사람들은 악수를 하고, 서로를 껴안고, 군인들은 환호를 하고, 오펜하이머를 바라보며 박수를 쳤다. 그렇게 모든 게 끝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오펜하이머를 기다리는 건 냉정하고 잔인한 세상의 이기심이었다. 잡지 표지에 그의 얼굴을 실은 이유는 그가 더 많은 폭탄을 만들기를 바라서다. 세상이 그의 이름을 부르짖는 이유는 그가 저지른 일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라는 이유에서다. 대통령이 오펜하이머를 부른 이유는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대통령님, 제 손에 피가 묻은 거 같습니다."


출처 - 네이버


  오펜하이머는 폭탄을 만들었다. 그때의 세상은 흔들리고 있었고, 자신의 존재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것을 지탱하게 만든 건 거대한 불기둥이었고, 세상을 뒤덮을 열기 었다.


"이제 나는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평생을 그의 머릿속에서 맴돌던 환영이 결국 현실이 되었다. 발을 딛고 있는 땅에 위에 핵 미사일이 세워져 있고, 무수히 많은 미사일들이 그의 머리 위를 날고, 그가 바라 보는 지평선 너머에서 하늘을 뒤덮는 불기둥이 솟아오른다. 세상이 그에게 박수를 치며 환호하지만, 그 환호는 끝내 비명이 되어 돌아왔고, 그를 향한 박수갈채는 땅을 뒤흔드는 진동이 되어 세상을 뒤덮었다. 이제 세상에는 '불을 가져다준 선지자'는 없다. 그저 그 존재가 가져다준 '불'만이 세상을 뒤덮고 있을 뿐이다. 그는 또다시 눈을 감는다.





 영화의 마지막 15초는 한탄과 전율을 선사하였다. 하늘을 뒤덮는 미사일의 구름들과 지구의 반대편에서부터 퍼져가는 불기둥의 그을림은 내 몸을 짓누르며 한숨만을 불러일으켰다. 단 하나의 선택이 수많은 갈래를 만들어 세상에 불안을 만들었고, 그 결과 우리는 아직까지도 핵폭탄의 공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하늘에서부터 내려져온 불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지만, 인간의 탐욕이 그것을 공포로 만들었듯이, 세상에 평화를 선사해 준 핵은 또다시 세상의 불안을 만들어냈다.


이것은 픽션이 아닌 사실이다.






출처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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