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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Sep 21. 2019

아빠의 등 (2)






  우리는 다세대 주택 2층에 살고 있었다. 단칸방 생활을 드디어 청산하고 처음으로 방 2개에 거실까지 갖춘 전셋집으로 이사를 온 것이다. 1층에는 6학년 아들을 하나 둔 주인 부부가 살고 있었다. 아랫집과 우리는 자주 왕래하며 꽤 살갑게 지냈다. 나는 동생을 둘이나 둔 맏이였기에 아랫집에 커다란 오빠가 있다는 것이 참 좋았다. 그래서 오빠를 잘 따라다녔다.



  매미가 울어대던 여름날, 그날도 1층 주인아줌마와 오빠가 집에 놀러 왔다. 거실에서 어른들은 과일을 드시며 담소를 나누셨고, 오빠와 나는 내 방으로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8살짜리 여자애와 6학년 남자애가 같이 뭘 하고 놀게 있었을까 싶다. 잘 놀다가 어느 순간 오빠의 눈빛이 변한 걸 느꼈다. 이불을 펴더니 날 눕혔다. 아무 생각 없이 누워서 오빠를 바라보았다. 오빠가 다가와 내 바지를 벗겼다. 무섭게 왜 이러지 싶어 “오빠 왜 그래?”라고 물었다. 오빠는 날 한번 쳐다보더니 갑자기 바지를 벗고 팬티를 내려 고추를 꺼냈다. 그것이 내 기억 속에 처음 자리 잡은 남자의 생식기였다. 오랜 시간 따라다닌 기억. 분명 내 남동생 고추도 많이 봤을 텐데 내 머릿속엔 ‘고추’ 하면 그 날의 그 오빠 고추만 떠올랐다. 오빠가 다가와 내 다리를 잡았다. 난 왜 그러는 거냐며 뒤로 물러섰다. 오빠가 내 쪽으로 고개를 숙여 몸을 기댔다. 잠시 주춤하더니 오빠는 하던 행동을 멈췄다. 아마 내가 기억을 못 할 만큼 적은 나이는 아니란 걸 순간 깨달은 것 같았다.



  그 이후 상황이 세세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몇몇 장면이 마치 사진처럼 머릿속에 남아있다. 야구 방망이를 든 아빠가 소파에 앉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장면, 오빠와 아줌마가 무릎을 꿇고 싹싹 비는 장면, 그리고 그런 그들을 현관문 틈으로 훔쳐보는 나. 그 정도이다.



  아빠가 진주네 중국집으로 날 데리러 온 것은 그 날이 한참 지나고 나서이다. 나는 아빠의 등에 기대 무섭게 화를 내던 그때의 아빠를 떠올렸다. 왜 날 데리러 왔을까. 혹시 그 날의 일 때문일까? 옷도 안 갈아입고 밥도 안 먹고 올 만큼 내가 걱정이 됐던 걸까?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날의 아빠가 너무 불같았기에 또다시 상기시키고 싶지 않아 속으로만 생각했다. 내 표정이 아빠에겐 보이지 않을 테니 다행이었다.  



  아빠의 큰 보폭 때문인지 금방 집에 도착했다. 아빠는 대문 앞에서 벨을 누르고 날 내려줬다. 괜히 마음이 울적했다. 또 이렇게 업어줄 날이 오지 않을 거란 걸 알기에 섭섭했던 것이다. 이후로 나는 20살이 될 때까지 수학여행을 제외하고는 밖에서 자본 적이 없었다. 물론 그것이 불만인 때도 있었지만 외박은 절대 안 된다고 차갑게 말하는 아빠의 표정 속에 감춰진 속뜻을 난 알고 있었다.  



  아마 그 날은 나보다도 아빠에게 더 상처인 날이었던 것 같다. 딸 가진 부모가 그런 걱정 한번 안 해봤겠냐 마는 알고 지낸 남자아이에게, 그것도 본인의 집에서 딸이 그런 일을 겪을 수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다행인 건 사실 성에 눈을 뜨기 전까지 난 그날을 그저 궁금증이 가득한 날로 기억했다는 것이다. ‘그 오빠가 대체 나에게 뭘 하려 했길래 아빠가 그렇게 화를 냈던 걸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에 가득했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 없었을 뿐이다. 나에게는 상처가 아니었단 걸 아빠가 안다면 조금 편해질까?  



  여전히도 거칠고 투박한 그의 말투는 나에게 비수로 꽂힐 때가 있다. 딸천재의 면모를 어김없이 뽐내는 것이다. 그러나 추운 겨울날 아빠의 등에서 느낀 따뜻한 온기는 폭풍우처럼 거센 삶 속에서 오랜 시간 날 지탱해 준 말뚝 같은 존재였다. 누군가 나에게 일생에 하나의 추억만 간직할 기회를 준다면 난 주저 없이 아빠의 등에 업혔던 그 날을 선택할 것이다. 그 밤의 기억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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