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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Apr 30. 2022

번역이 필요한 말

회사에 외국인 친구들이 있다. 미국, 페루, 우즈베키스탄 등 국적도 다양하다. 외국인과 한 공간에서 함께 지내본 적이 없는 나는 그들과 근무한다는 사실을 알고 내 서툰 영어 실력 때문에 서로 불편한 일이 생기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다. 그러나 내가 영어를 대하는 것보다 그들은 훨씬 한국어에 열정이 넘치는 청년들이었고, 한국인보다 한국어를 더 잘하는 그들 덕분에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1년을 잘 보냈다.


하지만 문제가 항상 없는 건 아니었다. 대화를 나누다 서로의 농담을 이해하지 못해 웃을 타이밍을 놓치기도 했고, 그들의 진지한 고민 상담에 진짜 하고 싶은 말을 100% 전달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업무를 협업해야 할 때에는 애매한 단어 차이 하나로 제 꼬리를 물기 위해 한자리를 뱅뱅 도는 강아지마냥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어쩔 줄 몰라하기도 했다. 그럴 땐 구글 번역기나 파파고를 돌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해야 했다.


얼마 전, 하트시그널 출연자인 천인우 님의 인터뷰를 보았다. 그는 잘생긴 외모뿐 아니라 페이스북에서 근무했다는 화려한 이력이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미국 생활과 페이스북에서의 이야기를 몹시 궁금해했고, 그는 여러 인터뷰 콘텐츠를 통해 독자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었다.


그중 인상 깊었던 내용은 이것이었다. 미국이란 나라는 세계 각지에서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인종, 출신 국가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동료와의 커뮤니케이션이 몹시 중요하다. 그곳에선 영어가  많은 사람에게 모국어가 아닌 2 외국어(또는 3 외국어)   있기 때문에 최대한 쉬운 단어와 표현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해야 한다.


그는 두 나라, 한국과 미국이 커뮤니케이션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나의 설명을 상대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경우 상대의 이해력이 달려서 같은 한국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듣는 사람이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경우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다. 내가 어렵거나 애매모호한 표현을 사용해 전달했기 때문에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하는 거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이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여러 차례 최대한 쉬운 말로 설명한다고 했다.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은 업무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업무 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만들어 나가는 커뮤니케이션은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가끔 나는 사람들에게 각자 고유의 언어가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한국어로 대화를 하고 있지만 그것은 전달하는 도구일 뿐, 실제로는 나는 나의 언어로, 당신은 당신의 언어로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각자 살아온 환경과 그동안 맺어온 관계, 그리고 자아 성찰 정도 등에 따라 오랜 세월 변화하며 형성된 고유 언어의 존재를 잊고 서로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착각 속에 내 말의 의미가 상대에게 잘 전달될 거라 생각한다.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그램을 종종 챙겨본다. 아동 심리 전문가 오은영 박사가 일상에서 문제를 겪고 있는 아이들을 코칭해주는 방송이다. 매 회 첫 부분에는 아이의 문제가 두드러져 보인다. 그러나 VCR을 보다 보면 점차 아이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상당수 부모의 잘못된 훈육과 육아 방식이 아이를 힘들게 만든다. 특히 부모가 본심과는 다른 말을 자식에게 내뱉어 오은영 박사의 지적을 받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열심히 공부했지만 시험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 속상한 아이에게


"네가 그럼 그렇지. 다음에는 더 열심히 해서 잘 봐라."

"그렇게 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이라도 가겠니? 더 열심히 해!”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누가 있을까. 그들의 말속에는 '네가 정말 잘 됐으면 좋겠다'는 응원의 메시지가 들어있을 테지만, 정작 입에서 나오는 말에는 그런 마음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말에 담긴 진짜 의미를 알리 없는 아이들은 어른으로 성장해나가면서 자존감에 큰 상처를 받기 일수다. 그리고 부모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언어를 그대로 학습하며 자연스럽게 자신의 언어로 만들어 나간다. 오은영 박사는 그런 상황을 매우 안타까워하며, "아이고, 이번에 열심히 했는데 생각했던 것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아 너도 속상하겠다. 그래도 노력했으니까 된 거야. 다음번에 또 열심히 해서 잘 보자! 이런 말이 하고 싶으셨던 거죠, 어머니?"라고 말하면 그 말을 들은 부모는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세차게 끄덕인다.


얼마 전 가까운 지인 A, B, C와 오랜만에 만났다. 우리는 여러 해를 함께 보내 서로의 성격과 특성에 대해 잘 아는 편이다. 대화 도중 A가 최근에 지인에게 상처받았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이야기를 들은 B는 그를 위로하며 말했다.


"너 정말 힘들었겠다. 그런 사람들 종종 있더라. 그걸 어떻게 견뎠어? 고생했다, 정말"


A가 대답했다.


“응, 정말 힘들었어. 그래도 이젠 괜찮아.”


옆자리에 앉아있던 C도 A에게 말을 건넸다.


“왜 너 주변에는 참 희한한 사람들이 많을까. 힘내라.”


A는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내가 문제라는 거야?"


C가 대답했다.


"네 문제는 없어. 그냥 네 주변에 희한한 사람들이 많아."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나는 C에게 말했다.


"뭐야~ 그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잖아. 그렇게 말하면 얘 속상하잖아. 그렇게 말하지 마."


의기소침해진 A는 다른 대화하자며 화제를 돌렸다.


어느 때부터였을까. 나는 내 귀에 '보이지 않는 번역기'를 설치했다. 누군가 상처되는 말이나 의도를 알아채기 어려운 말을 할 때 나의 언어로 바꿔주는 번역기. 그것은 순전히 나를 위한 일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번역기는 나와 몇십 년을 함께 한 가족 또는 가까운 친구들과 있을 때 더욱 작동할 일이 많다.


생각해보면 나도 C 와의 대화에서 번역기를 왕왕 작동시킨다. 그가 뱉는 말의 의도를 알아채기 어려울 때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로를 위해주는 사이라는 건 분명 변함이 없는데 그와 대화를 할 때에는 그 마음이 와닿지 않는다. 왜일까. 나와 C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언어가 달라서이지 않을까. 만약 내가 A였다면 C의 말을 듣고 나의 번역기로 한번 걸러 들었을 것이다.


"네 주변에 너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구나. 네 문제는 아니니까 너무 마음 쓰지 마.”


그런데 이제 슬슬 나의 번역기도 지쳐간다. 가끔 버벅대긴 해도 구글 번역기 못지않게 빅데이터로 자동 학습을 오래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떨 땐 터무늬 없이 잘못 직역해 마음을 한차례 더 후벼 파기도 한다. 마치 ‘꽃보다 청춘’ 아이슬란드 편에서 영어에 서툰 조정석이 핫도그를 주문하기 위해 번역기에 대고 "핫도그 세 개 주세요."라고 말하자 번역기가 “Please, hot dog world."라고 대답했던 장면처럼.


우리는 소중한 사람들과 마음을 주고받을 때 직역해서는 알아듣기 힘들고 번역이 필요한 말을 생각보다 빈번하게 주고받는다. 마음은 정말 그게 아닌데 상대가 들었을 때에는 의도를 알 수 없고 가끔은 상처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말들을 그 사람의 해석 능력 혹은 번역 능력으로 넘길 때가 있다. 우리가 같은 한국어를 사용하지만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언어는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고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말을 건네도록 노력해보는 건 어떨까? 글을 쓰다 보니 나도 그럴 때가 있진 않은 지 되돌아보게 된다.


본심을 그대로 전할 수 있는 내가 되길.

그런 당신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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