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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Sep 18. 2019

빨래





  그래, 맞아. 이곳은 나에게 여행지이지만 이들에겐 생활의 장소지. 처음 바르셀로나 여행을 갔을 때 창문 밖에 주먹구구식으로 이어놓은 빨래 줄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그 줄에 달랑달랑 매달려있는 티셔츠와 바지, 심지어 적나라한 속옷들까지 나에겐 너무나 놀라운 광경이라 ‘어떻게 빨래를 저기다 말리지?’ 하는 생각부터 ‘밖에 사람들이 다 볼 텐데...’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거부감과 신기함, 그 이중적인 감정 속에서 나는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물론 집주인이 볼세라 건물 사진을 찍는 척하며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 어릴 적 살던 동네에도 마당 한쪽에 나무와 기둥을 연결해 빨랫줄을 만들어 쓰던 집들이 꽤 있었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다. 그 긴 빨랫줄에는 가끔 생선이 꼬리를 집힌 채 널려 있기도 했지만 대체로 주인집 식구들의 옷가지와 우리 집 식구들의 조그마한 양말들이 전깃줄 위에 총총 서있는 참새들 마냥 걸려있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바람에 나부끼는 빨래들을 보고 있으면 괜히 기분이 이상해졌다. 내 몸에 걸치고 있을 때나 방바닥에 나뒹구는 모양새를 볼 때 그것은 단지 옷일 뿐이었는데 물기를 잔뜩 안고 빨랫줄에 매달려 있는 걸 보면 이상하게 달리 보였다. 누군가의 삶을 훔쳐보는 기분이 들기도 했고,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어떤 이의 다른 면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바람에도 흔들림이 없었던 물에 젖은 아빠의 작업복을 볼 때면 더 그랬다.

 
  그가 벗어놓은 옷에 세제를 풀어 때를 지워내는 건 오늘 그가 잔뜩 묻히고 들어온 추억과 설움, 그리고 고됨까지도 씻겨내는 것과 같았다. 물기와 상실감만 남은 그 옷들을 빨랫줄에 걸어놓으면 햇빛이 다가와 그에게 내일을 살아낼 수 있는 생명력을 주었다. 그럼 다음날 아침, 아빠는 소금기를 털어내듯 옷에 조금이라도 남아있을지 모를 설움을 탁탁 털고 상쾌한 기분으로 작업복을 입고 나가는 것이다. 나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저 옷이 어제 빨랫줄에 걸려있던 그 힘없는 빨래가 맞나 생각했다.
 

  가이드와 함께 바르셀로나 시내를 투어 했을 때, 여행자 중 한 명이 여기 사람들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본인도 이 곳에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가능하겠냐 물었다. 가이드는 이렇게 대답했다. ‘여러분은 여기 못 살걸요? 여기 생각보다 가난해서 욕심이 없어야 살 수 있어요. 근데도 여기 사람들은 왜 이렇게 행복해 보일까요? 이 사람들은 적은 돈으로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알더라고요. 행복하기 위해서 꼭 큰돈이 필요한 건 아니래요. 그래서 낮에 씨에스타 종이 붙여놓고 그렇게 잘 수 있는 거예요.’

 
  문득 거리에서 마주치면 생긋 웃어주던 스페인 사람들의 미소가 떠올랐다. 그들은 매일 아침 강렬한 지중해 햇볕에 바짝 말린 옷들을 꺼내 입겠지? 내가 묵었던 에어비앤비 집주인은 우리를 정원 테라스로 이끌며 이곳이 햇빛이 가장 좋아 빨래가 잘 마르는 장소이니 꼭 여기서 빨래를 말리라고 말했었다. 그는 왜 그리도 빨래가 잘 마르는 그 정원을 강조했을까? 그들의 미소엔 어느 빛보다도 강렬한, 빨래에 서려있을 설움까지도 바싹 말려 줄 지중해의 햇빛이 담겨 있던 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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