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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다 Jan 29. 2020

10년, 짧은 표류일기 - 끝

공황장애와 우울증으로부터 살아 남아온 나를 위한 기록

넓은 바다가 있다. 그 위에 아주 작고 낡은 쪽배가 떠있다. 배 위에 탄 사람은 더 이상 가야 할 곳도, 노를 저을 힘도 없다.


그래서 그냥 물 위에 떠있기로 결심했다.


대학 졸업과 회사 생활

끝과 처음


절대 못할 것 같았던 대학 졸업. 과정은 힘들었다한들 끝이라는건 참 쉬웠다. 이 무렵 서서히 줄여오던 공황장애 약을 끊었다. 항상 약병은 쥐고 다녔지만. 별 의미없는 졸업식은 가고 싶지 않았지만 엄마가 꼭 가고 싶어해서 학사모쓰고 사진까지 찍고 왔다. 휴학까지 합쳐 5년이 지났다. 아무것도 해놓은게 없어서 4학년 막바지에 졸업 시험, 토익, 자격증을 한 번에 했었다. 친구들이 그랬다. 넌 참 게으른데 성실하다. 당장 내일 죽더라도 오늘 삶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겁쟁이라 내일 못 죽을 수도 있으니까.


여차저차 월급은 많지 않지만 복지가 괜찮은 회사에 취업했다. 잘 다녔다. 한 7개월 정도는 정말 잘 다녔다. 지옥철로 유명한 2호선 출퇴근길을 겪으면서 내렸다가 다시 타는 일도 없었고, 약을 끊었음에도 나름 지낼만 한 나날들이 이어졌다.


생각해보면 참 좋은 곳이었다. 사람으로 스트레스 받지 않는 회사가 얼마나 있을까?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에게 문제가 있었다. 외근이 잦아지고 외부와 접촉하는 일들이 생겨나자 또다시 불안이 날 찾아왔다. 괜찮은줄 알았는데, 외근을 다녀오는 택시 안에서 또 다시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식은땀이 났다. 차가 막혀서 도로 위에 그대로 뛰어내리고 싶었다. 그 뒤로는 동료에게 양해를 구해서 차가 막힐 시간에는 지하철을 타고 복귀했다.


다시 찾아온 불안과 공황은 지독했다. 청심환을 매일 사마셔도 해결되지 않았다. 다시금 몸이 아파왔고, 병원을 전전했지만 별다른 병은 발견되지 않았다. 한 3~4개월을 버티다가 다시 약을 먹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절망적이었다. 그리고 1년 7개월의 짧다면 짧은 첫 회사생활을 마쳤다. 내가 못 버텨서 그랬다. 회사 분들도 다 좋았고, 업무 강도도 그리 쎄지 않았는데 내가 못 버텨서 그만 뒀다.


이런 내가 대체 뭘 할 수 있을까?




퇴사 후 공부시작

몸이 아프고 공황장애가 다시 심해져 밖에 나갈 수 없을 때, 집에서 일할 수 있는 직업이 뭐가 있을까?


회사를 그만두고 스트레스로 두 달만에 6kg이 넘게 빠졌다. 원래도 마른 체형에 6kg이 빠지고 나니 길 가다가도 쓰러져 죽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모순적이게도 정말 죽을까봐 걱정이 됐다. 회사를 다니면서 벌어놓은 돈으로 학원을 등록했고, 노트북을 샀다. 900만원 가까이 썼다.


다시 약을 늘리고 병원에 꾸준히 나가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고민했던 개발 공부를 시작하면서 버텨야 했으니까. 학원은 지하철로 1시간이 넘게 걸렸으니 버틸 수 있어야 했다. 체력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버틸 자신이 없었지만 900을 쏟았으니 죽어도 학원에서 죽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몸이 아프고, 혹여 병에 걸리고, 공황장애나 우울증이 극도로 심해져서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을 때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 뭐가 있을까? 공황장애에 처음 걸린 뒤 얼마 지나지 않은 때부터 여태까지 아주 오랜기간 생각했었다. 언제 죽든, 내 몸 하나가 누군가에게 민폐가 될 일은 없도록. 그래서 개발 공부를 시작했다.


몇 번이고 그만 두고 싶었지만, 이것도 거의 다 버텼다. 버티는 삶이라면 이제 이골이 난 듯 싶다.




버티기로 결심한 이후에도 몇 번이나 풍랑과 해일이 지나갔다. 지금도 계속해서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친다. 차라리 이 낡은 배를 버리고 뛰어내려버릴까 몇 번이나 고민했지만, 가족들을 생각해서 그러지 않기로 했다.


가끔은 비까지 내린다. 온 몸이 축축해져서 바다에 빠져있는지 배 위에 있는지 분간이 되지 않을 때도 많다. 비가 내리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견디고 파도가 치면 배가 뒤집어지지 않길 바라며 표류하는 중이다.


10년 째. 그렇게 나는 아직도 바다 위에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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