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지점은 어디에
"우울증은 에피소드 같아요. 되돌아갈 수 있어요."
"저는 돌아갈 지점이 없어요."
즐겨읽는 칼럼이 있다. 정신과 의사들이 쓰는 칼럼인데 개원 이벤트로 무료정신검진을 해준다고 하길래 다녀왔다. 돈 대신 내 정보를 넘기는거지.. 내 정신건강 결과가 연구결과에 아주 요긴하게 쓰였으면 좋겠다.
검사결과만 받아서 오려고 했는데, 상담비용이 지원된다고 하길래 상담도 받았다. 별로 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생각뿐이었는지 막상 입을 열기 시작하니 나도 모르게 주절주절 내 얘기를 늘어놨다. 공황장애는 치료할만큼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완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우울증은 원래 성격이 우울해서 이러고 사는줄 알았는데 의사 선생님이 치료를 권했다. 공황장애를 치료하면서 병행되었어야 할 치료였는데 나의 완강한 거부로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이번에도 거부를 했다. 저는 다시 약을 먹고 싶지 않아요. 라는 내 말에 의사 선생님은 너무나 안타까워했다. 나아질 수 있는데, 좋아질 수 있는데. 그리곤 그렇게 말씀하셨다.
우울증은 에피소드 같아요. 되돌아갈 수 있어요.
아, 사실 이 말을 듣자마자 난 글렀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돌아갈 지점이 없어요. 라고 대답했다. 에피소드가 끝날 수 있는 지점이 없어요. 시작된 지점도 없어요. 너무 오래돼서 기억하지 못하는거라 하셨지만 정말로 기억이 나지 않는건지 정말 나에게 돌아갈 지점이 없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죽어야 이 에피소드가 끝날 것 같은데. 차마 그 말은 하지 못했다.
회사 근무시간 중간에 병원에 들렀기에 오랜시간 얘기를 할 수는 없었다. 선생님은 본인이 아니어도 좋으니 공황장애 치료를 받았던 병원에라도 꼭 가서 치료를 받으셨다면 좋겠다고 하셨다. 요즘 기억력이 현저하게 떨어진걸 느낀다. 요즘은 아니고 근 몇년새. 악화되고 있는 요즘은 더더욱.. 생각이 잘 안난다. 말 하려던 내용도 까먹고 어휘력은 물론이다. 몇 년간 쓴 글을 보면 해가 갈수록 수준이 떨어진다.
정말 돌아갈 수 있는 지점이 나에게도 있는 걸까. 이 에피소드의 끝은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