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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다 Aug 05. 2020

버티다 보면 세월 가

잡힌 발목

버티다 보면 세월 간다.


다만 세월과 같이 가는게 아니라 가는 세월 속에 갇혀있다. 정신적 성장은 어림도 없다. 세월은 가는데 정신연령은 문제가 있던 시점에 멈춰 자라지 않는다.


10년째 자라지 못하고 있다.


당장이라도 삶을 끝낼 수 있지만 끝내지 못하는건, 나를 사랑하는, 강한척 하지만 마음 약한 엄마, 중요한 시험 준비중인 미래가 밝은 동생, 밉지만 그래도 아직 마음이 순수한 아빠. 모두의 삶이 구렁텅이로 쳐박힐걸 알기 때문이다.


나만 괴로우면 될걸 모두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 수 없어서 지옥 위에 발 붙이고 버티고 있다. 삶에 갇히고 세월에 갇혀 발목 붙잡혀 있다.


진짜 힘들면 가족 생각도 안 난다고 하는데 글쎄, 매일을 절벽 끝 벼랑에 매달린 심정으로 버티고 있다.


이기적인 내가 결정적인 순간에 이기적이지 못해서 버티고 있다. 버티니 세월이 가더라. 산게 아니라 세월이 갔다. 우두커니 멍청하게 서있는 날 비웃듯 빠르게도 지나간다.


오늘 허난설헌 얘기를 주제로한 뮤지컬을 보고 왔다. 그가 버티기엔 세상이 그에게 너무 잔인했던 이유일까, 포기 그 어디쯤일까. 빛나는 그의 천재성보단 마지막 순간, 세상에 미련 둘 것 없이 떠나간 그의 마음이 부러웠다. 천재성도 없는 나는 내가 죽은 후의 세상까지 고려하며 붙들려 살아있어야 한다.


아주 아주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애초에 나란 존재가 없었던 것처럼 사라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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