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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사 Jun 18. 2020

다른 이들에게 보여줄 성공이 없을 때

'좋아요' 사회가 되면서 사는 게 피곤해지고 있다. 매일같이 인스타그램 스토리와 피드 등으로 타인을 평가하는 통에 매일 뭘 보여줘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럴 때는? 그냥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안 하는 게 상책!


아이가 생긴 이후로 내 SNS의 대부분은 아이 사진으로 바뀌었다. 남편이 베이킹을 시작하고는 베이킹 사진이 추가되었고. (우리 남편 이렇게 다정해요~) 이따금씩 주말에 가족들끼리 좋은 곳에 가서 식사라도 하면 포스팅을 하게 된다. 호캉스를 했다고? 당연히 올려야지. 근데 대놓고 올리면 창피하니까 은근슬쩍 '나 이런데 못 가는 사람 아니에요'라는 분위기만 풍기게.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내 모습은 무엇일까? 나는 이렇게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잘 살고 있습니다. 이게 가장 명백한 메시지다. 그리고 이따금씩 보이는 레스토랑과 호텔 사진에서 '우리 집은 이 정도 삽니다'의 냄새를 풍기는 게 아닐까. 나뿐만 아니라 다들 그럴 거다.


이런 모습들만 보여주다 보니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주로 남게 된다.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사람들. 요즘 나와 간단한 커뮤니케이션이라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목가적인 삶을 지향하며 가정과 아이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사람들이다. 예전에는 사회적 성공과 익사이팅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SNS가 현실세계보다 더 의미 있고 큰 공간이 된지도 오래다. 현실에서 친구 안 만나도 SNS로는 매일 수백 명을 접촉한다. SNS에서 보여주는 삶과 가치관이 그 사람이 되어버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는 게 훨씬 피곤해졌다. 현실에서는 직장 사람들, 한 달에 한두 번 만날까 말까 하는 친구들만 신경 쓰면 되는데 이제 수백 명 수천 명의 눈이 나에게 쏠린다. 이게 온라인 세계에만 그치면 좋은데 오프라인으로까지 확장되는 날도 머지않았다. 오죽하면 모든 인간이 자신의 별점에 근거해 경제, 사회 활동을 하는 세상까지 드라마로 그려지고 있을까.(넷플릭스 오리지널 블랙미러 '추락'편 참고) 그 드라마가 별점 사회를 구체화해서 그렇지, 실제 우리도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을 통해 타인을 레이팅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나.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게 없으면 참 곤란하다. 나라는 존재를 증명할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뭐라도 보여줘야 하는데. 하다못해 주말 점심에 먹은 브런치라도 사진 찍어야 하고 내가 어울리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한번 보여줘야 하는데. 나 요즘 어떤 성취를 이뤘는지 자랑 좀 해야 하는데. (내 얘기다)


하다못해, 하다못해 달고나 커피 만든 거라도 인증해야 한다. 그것도 아니면 편스토랑에서 나온 신상 제품 먹은 거라도. 이 포스팅의 메시지는 '나 핵인싸예요.' 그마저도 없으면, 정말 정말 불행한 상황이라면 내가 이 상황을 어떻게 잘 이겨내고 있는지 나의 씩씩함이라도 알려야 한다.


이 모든 포스팅이 담는 메시지는 궁극적으로 하나. '나 이렇게 잘하고 있어. 나 대단하지?'


안 그럴 수 있는 사람 손. 아니 아예 없다는 건 아니고.


일단 나를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이고 우리는 그런 표현들을 매개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근데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게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사람 사이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필연적으로 종속된다. 여기서 자유로운 사람들이 이따금씩 있겠지만, 진정한 자유는 완벽한 고립에서 온다. '나는 자연인이다'를 외치는 사람들이 왜 산으로 갔겠는가.


서로 평가하게 되는 부분은 돈뿐만 아니라 지적 성취, 배우자, 결혼 생활, 패션, 아이가 있는 경우 양육 형태, 아이의 외모까지 정말 다양하다. 비교하고자 하면 한도 끝도 없다. 크게 잡고 보면 우리의 모든 라이프스타일이 타인의 평가 대상이 된다.


이게 잘못됐냐고? 전혀 전혀. 사람 사는 게 그렇지 뭐. 과하면 피곤하겠지만 우리 본성인데 어찌 부정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계속해서 준거집단과 내가 생각하는 나의 이미지를 쫓아 발버둥 친다. 현재 내 삶에 주어진 축복과 가치들은 경시하고. 다들 그렇게 사는 거 아닌가. 오죽하면 예수님이 '범사에 감사하라'라는 지침까지 주셨을까. 인간이란 결코 '범사', 즉 모든 일에는 감사하지 못하고 사니까 그렇게 말씀하신 거다.


다시 제목으로 돌아와서.


타인에게 보여줄 성공이 없을 , 좌절하지 말자. 감사하고 살면 딱히 타인의 인정도 필요 없게 된다. 타인에게 보여줄 성공이 없어도 괜찮다.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주어진 것들로 이미  삶은 충만하니까. 아아 간교한 인간이여. 이런 말을 쓰면서도 ' 삶은 감사로 충만하다'라는 이미지를 표방하려고 무의식꿈틀댄다. 무의식아 제발 나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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