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에요.
시험이 끝난 후 사람들은 의례 결과를 묻기 마련이다. 결과를 물으시는 분들에게 시험에 떨어졌음을 말씀드리면 공통적으로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그래, 그럼 내년엔 어떻게 되는가? 재계약할 수 있는가? 아니면 다른 학교를 알아봐야 하나?”
그래도 시험 결과를 궁금해하시는 분들은 가깝게 지내던 분들이라 차마 거짓말은 할 수 없어, 학교를 그만두고 프리랜서 개발자가 되고 싶다는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다. 그러면 대부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시다가 “그래 열심히 해 보게”라고 말하시는 것이다. 아마 이해가 되진 않지만 그래도 같이 오래 일해온 사이라 덕담해주시는 것일 게다.
기간제 교사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한다고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은 늘 한 가지다. 과연 네가 새로 시작하려는 그 일이 교사보다 더 나은 일인지. 이것저것 내가 새로 하려는 일에 대해 설명을 해 보기도 했지만, 사실 나조차도 아직 정확한 개념이 잡힌 것은 아니라서 쉽게 설명드릴 자신이 없다. 그래서 이제는 누가 “왜 하필 개발자인가?”를 물으면 이렇게 답하는 것이다.
“그냥 개발자가 해보고 싶어서요. ”
아직 배움이 일천하고, 구체적인 사업 계획도 없고, 관련 자격증이나 학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진짜 개발자가 나타나서 지금 네가 하는 일은 개발의 ㄱ도 붙이기 힘든 조잡한 일이라 해도 나는 별 반박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개발자의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이며, 20대부터 공부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과연 네가 살아남을 수 있겠냐는 질문에도 뭐라 답할 말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프로그램 만드는 일을 해보고 싶다. 아직까지는 프리랜서 플랫폼에 간간히 뜨는 엑셀 vba나 파이썬을 활용한 간단한 프로그램 만드는 일 정도를 하고 있지만, 더 배워서 많은 프로그램들을 만들어보고 싶다. 지금 만들고 있는 간단한 프로그램 짜는 것도 이렇게 재미있는데, 더 많은 걸 배우면 더 재미있게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학교의 친한 미술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참고로 이 선생님은 내가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을 때 가장 크게 반대하셨던 분이기도 하다. 학교를 다니면서 천천히 준비해보는 게 어떠냐는, 현실적인 조언과 함께.
“선생님, 그림 한 편에 몇 천만 원씩 받는 작가들도 있잖아요. 아마 저는 그런 분들에 비하면 길거리에서 5천 원, 만원 받고 초상화 그려주는 사람 정도의 실력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그런데 그래도 많이 그리다 보면 입에 풀칠은 하지 않을까요. 그럼 전 만족할 거 같아요. 프로그램 만드는 게 재미있으니까요. ”
내 말에 공감하셨는지, 그 이후로 이 선생님은 나를 볼 때마다 용기를 북돋워 주셨다. 아마 작품 활동을 오래 하시다가 학교에 오신 분이라서 이해가 되신 모양이다. 도리어 학교를 그만둘 때가 점점 가까워오면서 큰 소리는 쳤지만 마음은 불안한 나에게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오늘은 학교의 인사위원회가 있었던 날이다. 아마 이 자리에서 내가 관리자 선생님께 드렸던 더 이상 재계약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공개적으로 밝혀진 모양이다. 몇몇 분들이 찾아와서 지금까지 많이 들었던 질문을 다시 물어보시기에, 나는 또 지금까지 답했던 말을 다시 반복했다.
“그냥 개발자가 하고 싶어서요. 선생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