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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수의힘 Jan 05. 2023

졸업식, 학교 생활의 끝

너 졸업하니? 나도 그렇다.

  오늘은 졸업식이 있는 날이다. 졸업식을 준비하는 건 교무부지만, 다른 부서들도 바쁘긴 매한가지다. 1년 동안의 마무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부서는 1년간 모으고 모은 시험 관련 서류들을 모두 문서함에 보관하고, 빠진 서류가 없는지 점검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맘 같아서는 '어차피 내가 안 볼 서류 꺼내는 사람이 고생하든 말든 다 쑤셔 박아버리면 되는 것 아닌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사람이 마무리가 좋아야 한다. 

  미리 주문해놓은 호두과자 상자가 일하는 도중에 배달이 와서 잠시 일을 놓고 선생님 전부에게 돌렸다. 기간제교사가, 그것도 학교를 관두는 기간제교사가 떡이나 과자를 돌리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사실 나도 10년 동안 근무했지만 한 번도 본 적은 없다. 그래도 6년 동안이나 동고동락한 선생님들에게 뭔가 작은 것이라도 하나 드리면서 마무리를 짓고 싶었다.

  학교에 소문이 어느 정도 나기도 했고, 가까운 선생님들에게는 미리 말씀을 드렸기 때문에, 내가 가져온 호두과자 상자가 어떤 의미인지는 굳이 설명드리지 않아도 되었다. 다들 열심히 하라고, 평소만큼만 하면 분명히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응원해 주셨다. 미처 소문을 듣지 못한 선생님께는 다시 처음부터 내가 하려는 일에 대한 설명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다시 설명해야 하는 시간이 또 필요했다.

  평소 진로실에만 계시기 때문에 자주 뵙지 못하는 진로 선생님께도 마찬가지였다. 진로 선생님께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내 생각을 간단히 말씀드렸다. 마찬가지로 응원의 말씀을 해 주신 진로 선생님께서는 문득 예전에 있었던 일을 말씀해 주셨다.


"코로나 19 때문에 원격 수업을 해야 했을 때, 자네가 학년 교과 선생님들 다 소집해 놓고 원격 수업 하는 방법 설명해줬을 때 있잖은가."


"네, 선생님."


"아직도 그때 자네가 한 말이 떠올라. 그때 자네 설명 끝나고 원격 수업하시면서 잘 안 되는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시라고 했었지."


"네, 맞습니다."


"거기까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지. 그런데 그다음 말에 난 감탄했네. 자네는 그때 연락 주시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설명드리겠다고 했었어. 나는 그게 꽤 충격이었네. 전화만 걸어도 귀찮아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자네는 직접 찾아와서 설명하겠다고 했으니까."


  선생님의 말씀에 문득 당시가 떠올랐다. 코로나 19가 터지고, 학생들 입학식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원격 수업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교육청마저도 시원하게 답을 해주지 못하던 3~4월이 있었다. 당시 부장 선생님은 인품도 훌륭하시고 같은 부서원들을 살뜰히 챙길 줄 아는 좋은 부장님이었지만, 이런 사태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컴퓨터 좀 할 줄 안다고 소문난 부서 기획인 나와 몇몇 젊은 선생님들을 묶어서 비상대책위원회 같은 걸 결성했고, 어떻게든 EBS 온라인 클래스 사용 방법과 교사용 노트북을 활용한 수업 동영상 촬영 방법을 준비한 다음 나름 설명회 같은 걸 했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어떻게든 학년 원격수업을 해내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절박했던 상황이었고, 그래서 아마 그런 말을 내가 했었을 것이다.


  "자네들이야 학년실에 같이 있으니까 모르면 서로 물어보고 할 수 있겠지. 그런데 나 같은 사람은 혼자 있어서 물어볼 사람도 없고, 물어보러 학년실을 가자니 방해될 것 같아서 자주 가기도 그래. 그런데 자네가 찾아와서 알려준다니 얼마나 고맙던지."


"별말씀을요, 그땐 누구나 그랬을 겁니다."


"아냐, 자네니까 그랬지."


  그때의 나는 그랬다. 문제가 발생하면 반드시 해결을 해야 했었고, 보통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사람은 나였다. 나도 모르는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라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든 해내야 했었기에 매일같이 구글 검색에 매달렸었고 밤낮없이 컴퓨터에 매달렸었다.

  원격 수업에 학생이 참여한 것을 어떻게 확인할 것인지, 출결은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등의 문제가 날이면 날마다 터져 나왔고, 진도율을 중심으로 진도율 90% 이상이면 출석으로 인정하자, 그럼 진도율은 어디서 확인하냐, 온라인 클래스 들어가 보면 있다, 그럼 온라인 클래스에 접속 안 하는 학생은 어떻게 해야 하냐, 담임이 전화해서 접속하게 하고 제시간에 진도율 맞춰 수업들을 수 있게 해라, 그럼 담임은 출근해서 계속 컴퓨터만 쳐다보고 있어야 한단 말이냐, 등등. 날이면 날마다 새로운 임기응변의 향연이었고 그 중심에 1학년 학년부 기획인 내가 있었다. 관리자급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을 어떻게든 실현해서 컴퓨터를 전혀 모르는 담임 선생님도 출결을 처리할 수 있게 해야 했다.

  처음엔 출결 관련 엑셀 파일을 온라인 클래스에서 다운로드하여 내가 만든 양식에 붙여 넣기만 하면 자동으로 진도율을 계산해주는 엑셀 파일을 만들었다. 여기까지만 했었어도 충분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의미 없는 단순 반복 작업을 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 무엇보다 시간이 부족했고, 하루 내내 마우스만 누르고 있다 보니 손목 통증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이래서는 1년을 버틸 가망이 없었고, 뭔가 새로운 해결 방안을 찾아야만 했다.

  매크로 프로그램을 검색해 보니 오토핫키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메모장에 간단한 명령을 작성하면 그대로 실행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프로그램을 실행하면, 마우스를 움직여 사이트에 접속하게 하고 정해진 위치에 있는 엑셀 파일 다운로드 버튼을 눌러 엑셀 파일을 가져오게 하는 스크립트를 작성했다. 10개의 반, 7개의 수업, 70개 정도의 엑셀 파일 다운로드하는 건 1분도 안돼서 끝났다. 겨우 한숨을 돌리나 싶었다.

  그러나 다음날, EBS 온라인 클래스는 업데이트를 단행했다. 마우스 위치를 하나하나 다 찾아가며 만든 나의 스크립트는 하루 만에 폐기했다. 선생님들께 내가 만든 스크립트를 배포하고 고개 좀 세우고 다니려던 나의 계획은 한방에 무너졌다. 날이면 날마다 마우스 위치를 변경해줘야 한다면, 차라리 엑셀 파일을 내가 직접 다운로드하는 게 더 낫지, 굳이 스크립트를 짤 이유가 없다. 거기까지 하고 포기했으면 좋았겠지만, 난 문제가 있는데 문제를 방치해두는 덴 소질이 없었다. 문제가 있는 이상 반드시 해결을 해야만 했다.

  구글 검색 끝에, 크롤링이라는 단어를 알아냈고, 홈페이지의 진도율을 직접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 알았다. 문제는 그걸 하기 위해서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학교에 나오지 않으니 시간은 나의 편이었다. 학교에서 서류처리하고 집에서는 구글과 유튜브를 보며 파이썬과 셀레늄을 공부했다. UI도 없는 나의 첫 프로그램이 검은 화면에 "진도율: **%"를 출력했을 때의 기쁨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진로선생님께도 호두과자 상자를 드리고 인사를 드린 후, 진로실을 나오며 많은 생각을 했다. 그때의 나는 왜 그렇게 그 프로그램에 매달렸을까. 문제가 있으면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게 내 성격이라서? 그것도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다른 선생님들이 별것도 아닌 잡무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는 게 싫었고, 시간 낭비하는 것이 싫었던 것 같다. 당시 내 프로그램은 9명이 하루 내내 들여봐야 할 일을 충실히 해냈다. 그리고 그때부터 개발자의 꿈을 꾸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학교를 그만둔다고 해서, 나는 교사로서 내가 가졌던 마음가짐과 태도를 손바닥 뒤집듯이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다. 누군가 나의 프로그램을 필요로 한다면, 나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심 성의껏 프로그램을 제작할 것이다. 친절하고 성실한 교사가 되고 싶었던 나의 꿈이, 친절하고 성실한 개발자가 되는 걸로 변했을 뿐이다. 나는 달라지지 않았다. 과정과 방법이 달라졌을 뿐 도달하고자 하는 삶의 목표가 변한 것은 아니라고, 나는 비로소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카카오 법무팀에서 편지 오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위 사진의 캐릭터는 카카카오의 어떤 캐릭터하고 우연히 닮은 내 모습을 애들이 그려준 거다. 이곳저곳 인사를 많이 하고 다녔더니, 학생들에게도 소문이 난 모양이다. 생일 축하 케이크는 얻어먹은 적이 있지만, 퇴직 기념 케이크는 처음 먹어본다. 아마 1주일 전에 이 케이크를 받았다면 또 마음이 많이 흔들렸을 게다. 학생들이 써준 편지를 읽었을 땐 내 기계적인 감성으로도 눈물이 날 뻔했을 정도였다. 이렇게까지 응원을 받았으니, 난 망하면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 나의 마지막 학생들에게, 수업 시간에 자주 이야기했던 길은 결코 하나만 존재하진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배우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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