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퇴교? 스스로 하는 Q/A
퇴직한다고 꽃을 받았다. 명예퇴직하는 사람도 아닌데 부끄러운 일이다. 마음 한 구석에 혹시라도 지금 하는 일이 잘 안 되면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없잖아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해주시니 학교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다. 지금 하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지 싶다.
나름 많이 준비하고 결정한 것인데,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많이 안 하는 편이다 보니 내 주변 사람들은 교사를 그만두겠다는 내 결심에 많이들 놀란 모양이다. 12월에 학교에 재계약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한 후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많이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적어 보았다. 혹시나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Q: 교사를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
A: 교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먼저 한 게 아니라, 지금 하는 일에서 더 재미를 느꼈기 때문에 교사 일을 그만두기로 한 것이다. 올해 일 년 동안은 담임이 아니라 개인적인 시간이 많아 부업의 형태로 하고 있었지만 한 사람이 두 개의 일을 동시에 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리인지 깨닫게 되었고 다시 담임교사로 돌아간다면 이 일을 더 이상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간단한 부업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그 수입이 점차 많아지게 되어 조만간 겸업 금지에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큰 문제 생기기 전에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Q: 구체적으로 무엇을 개발하는지? 교육 관련 프로그램?
A: 교육 관련 프로그램은 만들고 싶지 않다. 학교를 사랑하고 학생들을 사랑하지만, 학교의 시스템은 사랑하기가 쉽지 않다. 워낙 보수적이고 변화에 예민한 곳이라 교육 관련 프로그램 제작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여러 날을 고민하여 업무를 개선할 만한 프로그램을 제작해서 가져가면 며칠 정도는 편리하네 하면서 쓰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다시 불편한 방식으로 회귀해 버리는 일을 너무 많이 겪었다. 지금 주로 개발하는 것은 업무 자동화 프로그램이다. 주로 사무 업무에서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활동을 프로그램으로 제작하는 일을 주로 한다. 대형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하나 만드는데 대략 1~2일 정도 걸리는 작은 프로젝트를 위주로 작업하고 있다. 아무래도 사무 업무를 많이 했고, 컴퓨터를 다루는 데 익숙하지 않은 선생님들을 도와주는 일을 많이 하다 보니 이쪽으로 특화된 것 같다.
Q: 학교를 떠나는 것이 아쉽지는 않은지?
A: 솔직히 아쉬운 마음이 너무 크다. 물론 내 선택이지만. 하다 못해 기간제 교사가 정규직 공무원은 아니니까 겸업 금지라도 풀어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학교를 다니면서 학원 강사나 과외를 하면 당연히 안 되겠지만 직무와 관련 없는 일은 겸업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기간제 교사 중에 시험으로 정규직 임용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닌데 다른 일을 준비할 수도 있고. 제일 아쉬운 것은 수업을 못하는 것이다. 국어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교과와 관련 없는 잡담하는 것이 삶의 낙이었는데.
Q: 앞으로 먹고사는 문제는 어떻게 할 생각인지?
A: 지금은 그래도 수익이 어느 정도 나오는 편인데, 계속 이런 수익이 나올 보장이 없는 일이라 불안한 마음이 크다. 기술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면 금방 도태될 수 있기 때문에 우선은 벌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벌자는 생각이다. 딱 10년 정도만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10년 전에 지금 내가 하는 일을 하고 있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것처럼, 10년 뒤에 내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니까.
Q: 다른 기간제 선생님께 남기고 싶은 이야기?
A: 이 글을 쓰면서도 정말 많이 고민한 부분이다. 쓰다 지웠다를 열 번은 넘게 한 것 같다. 떠나는 사람이 남은 사람에게 뭔가를 이야기한다는 것도 주제넘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남기고 싶은 한 마디는 우리는 우리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는 우리의 삶을 절대 책임지지 않는다. 공부를 해서 임용을 붙든, 다른 길을 파든 살길을 계속해서 모색해야 앞으로의 길이 겨우 보이는 것 같다. 절대 학교 눈치 보지 말고 해야 할 일을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학교와 학생에 대한 책임감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 이전에 나 자신의 삶을 먼저 책임져야 한다. 교사로서 최소한의 책무를 다한 이후에는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쓰자. 돌이켜 생각해 보니 지난 시간 동안 결국 남은 것은 나를 위해 투자했던 시간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