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쁨과 불안 그 중간 어딘가
학교 생활 중에 겨울 방학을 맞은 것은 여러 번이지만 이번 겨울은 특히 특별하다. 다른 학교를 알아보기 위해 그놈의 자필 원서를 작성 안 해도 되고, 수업 실연이나 면접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한 1월이다.
사업자 등록을 할까 하고 알아봤는데, 사업자로 등록하면 세금 처리가 복잡해진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프리랜서로 일하면 3.3%만 원천징수하고 받으면 되는데, 사업자 등록을 하게 되면 부가세를 납부해야 한다고 한다. 솔직히 지금도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어서 이해한 부분만 간단히 쓰는 거다. 학교 행정실에서 전부 다 계산하고 남은 돈만 월급으로 줬던 때가 좋았구나 싶다. 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하는 모든 선생님들께 정말 감사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아직 정식으로 계약만료가 되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떠난 지 오래된 것 같은 느낌이다. 다행히도 1월이라 그런지 주문이 많이 들어왔다. 쓸데없는 걱정을 할 틈도 없이 밀려오는 주문들을 한 건 한 건 처리하다 보니 마지막에 글을 쓴 이후로 벌써 일주일의 시간이 흘러 버렸다.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다는 것이 프리랜서 생활의 가장 큰 장점이다. 해서 오전 중에 PT를 계약했다. 8시 30분 정도에 수업을 진행하는데, 이 시간에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교사 생활 중에는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교사 생활 중에 살이 너무 많이 찐 관계로 일단 감량부터 좀 하려고 한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앞으로 교사가 되고자 하는 분이 있으시다면, 꼭 명심하길 바란다. 학교급식은 살이 많이 찐다. 나는 이 학교에 6년간 근무하면서 무려 20kg 넘게 쪘다. 한 번에 찐 것은 아니고, 해년마다 조금씩 찐 것이 정신 차리고 보니 이 지경이 된 것이다. 의사가 운동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해서, 새해 벽두부터 바로 운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운동을 하러 가는 건물에는 같은 층에 피아노 학원이 있다. 문득 피아노도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루고 싶은 악기가 여럿 있는데, 그중에 피아노는 1, 2위를 다투는 악기다. 운동을 하러 가는 길에 유리창 너머로 기웃기웃해봤는데, 대부분 어린 학생인 것 같아 아직 용기를 내지는 못하고 있다. 우선 운동에 집중하고 생활에 더 여유가 생기면 생각해 봐야겠다.
월초부터 큰 주문이 하나 들어와서, 일주일 내내 코딩하느라 머리가 쪼개질 것 같은 기분이다. 나는 가급적이면 큰 건은 안 맡으려고 노력한다. 큰 건 하나를 처리하는 것이 작은 건 여러 개를 처리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에 맡은 건은 인쇄소의 회계 프로그램인데, 설명을 듣는 순간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어서 평소 내가 맡던 프로그램의 2~3배의 견적을 불렀는데, 그걸 사장님이 수락했다. 큰 프로그램 하나, 작은 프로그램 하나에 총 150만 원의 견적으로 계약했고, 일주일을 꼬박 컴퓨터에 매달려야 했다. 이제는 겨우 프로그램에 어느 정도 윤곽이 보여서 한숨 돌리고 있다. 세부적인 수정만 몇 번 더 거치면 완성이 될 것 같다. 이번 주 내로는 끝이 나겠지.
학교 생활 중에는 교사 생활의 여유로움이 좋았다. 수업과 수업 사이의 휴식 시간, 사람들과 가벼운 이야기를 하며 한숨 돌리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 지금은 반대다. 일이 없는 시간이 가장 불안하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의미 없는 클릭을 반복하는 시간에 수많은 잡념들이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다. 이대로 주문이 안 들어오면 어쩌지, 갑자기 망하면 어떻게 하지... 그러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그것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앞으로 외로움이 가장 큰 적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내향적인 것으로는 1, 2위를 다툰다는 INTP 성격이라 학교 생활 중에도 특별히 다른 선생님들과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조용히 일하는 것과 아예 혼자 일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교에서 일할 때는 내가 집중해서 일하고 싶을 때 말을 거는 사람들이 그렇게 싫었었는데, 막상 혼자서 일하다 보니 말을 걸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앞으로 이 외로움과 불안감과 친해져야 하겠지. 환경이 달라지면 생각도 달라진다는데 정말 그렇다.
프리랜서 생활을 준비하며 제일 크게 고민했던 것은 수익적인 문제였다. 그러나 막상 시작해 보니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정신적인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건강한 몸과 건강한 정신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은 운동을 시작했으니, 다른 사람과 어울릴 수 있는 취미생활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