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 길도 첫걸음부터
드디어 임용 결과가 발표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탈락이다. 교육청에 발표된 커트라인을 보니 내 점수와는 상당히 큰 점수 차이가 났다. 미련조차 남지 않게 해 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결과가 난 것을 보자마자 교장실로 달려가 내년에 재계약을 안 할 거라고 호기롭게 말하고 싶었지만 교무실을 박차고 나올 때까지만 호기로웠고 교장실 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이성적으로는 다른 대안이 없음을 알고 있고 결심도 한참 전에 끝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남은 일말의 감성이 오랜 교사 생활의 종지부를 스스로 내리는 것에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한참을 서성거리다 결국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험에 떨어졌음을 알리고 전에 말한 대로 내가 생각한 길을 걷겠노라고 말했다. 아내는 잠시의 틈도 주지 않고 오빠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며, 걱정 말라고 이야기했다.
그래 약해지지 말자. 스스로 결심한 것에 책임을 지자. 스스로에게 수도 없이 되뇐 끝에 결국 교장실 문을 열 수 있었다. 교장 선생님께 이번 시험 결과에 대해 말씀드리고, 다음 학기엔 재계약을 안 하겠다는 말씀을 무미건조하게 말씀드렸다. 물론 이건 내 생각이고, 듣는 사람은 요동치는 내 감정을 눈치채었을는지도 모른다. 교장 선생님은 순간 당황한 듯해 보였지만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표하시고 앞으로도 잘할 것이라는 덕담을 해 주셨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채 5분이 지나지 않았다.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교감 선생님과 부장님께도 간단히 말씀드리고 가까운 선생님들께도 말씀을 드렸다. 끝은 항상 짧다. 고민했던 시간에 비해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시 업무로 돌아왔다. 시험이 끝나면 학교에서 제일 바쁜 게 지금 있는 연구부라 금세 있었던 일을 지워버리고 업무에 전념할 수 있었다. 이 커다란 학교에서 사람 하나 들고 나는 일은, 지금까지도 그래왔듯 큰 일은 아닌 것이다.
이젠 더 이상 고민하고 말 것도 없다. 앞으로의 일에만 전념하면 된다. 성적처리 끝내고, 학생들 생기부만 끝내면 이 학교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완전히 끝나는 것이다. 그리고 새해가 되면 나는 교사에서 프리랜서 개발자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남들이 시키는 일을 했지만, 이젠 스스로 일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돼야 하는 것이다. 여러 사람 속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일하던 사람에서, 혼자서 일해야만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노력의 끝은 성공이 아니라 성장이다. 학생들에게 수도 없이 했던 말을 이제 나 자신에게 돌려줄 시간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하자. 학생들에게 할 때는 그렇게 한 마디 한 마디가 쉽게 쉽게 나오더니 막상 나에게 하려니 단어 한 마디 한 마디가 무겁게 다가온다.
2022년, 평생 기억에 남을 의미 깊은 한 해가 될 것이다. 이제 2022년의 마지막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끝까지 잘 정리하고 새해에는 정말 새 사람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