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하면 됐다.
올해, 근무하던 사립 고등학교의 정교사 임용시험을 응시했다. 임용고시야 매 해년마다 마치 행사처럼 치르고 하던 것이지만, 올해만큼은 더 느낌이 특별하다.
앞으로는 안 볼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았으면서 임용시험에 굳이 응시했었던 이유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이었기 때문에, 관성을 끊지 못한 것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면 합격할 가능성이 0에 수렴함에도 시험만큼은 꼬박꼬박 응시했던 이유는 어려서 공부깨나 했다는 자만과, 사범대 졸업생으로서의 이상한 고집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 외에는 사실 할 일이 없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설명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내가 기간제 교사로서 학교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있고, 학생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보다 올해는 내가 공부를 많이 했는지, 정교사가 될 수 있는지에 더 관심이 많아 보였다. 아니, 그것도 내 열등감의 발로일지도 모른다.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가능성도 없는 시험에 매달리는 것에 이제 스스로 질려 버린 것이다.
기간제 교사 생활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만큼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던 점이 훨씬 많았다. 학교 외의 다른 직장에 근무해본 것은 아니지만, 근무 환경과 대우가 최소한 평균보다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간제교사라고 차별과 무시를 당하거나, 불합리한 대우를 받았던 적도 없었다. 특히 지난 10년의 시간 중에 6년 동안이나 근무했던 지금의 학교는 관리자들도 민주적이고 동료 선생님들의 인품도 훌륭한 데다 무엇보다 학군이 좋아 학생들이 모두 예의 바르고 학구열이 넘쳤다. 학교에서 노력한 만큼 인정을 받았고 학생들에게 내 시간을 투자한 만큼의 보람을 보상으로 받았다. 시간적인 여유도 있어 취미도 충분히 즐겼고 자기개발에도 충실한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다른 길을 찾아보려고 한다.
나는 주인 의식을 가지고 학교생활을 해본 적은 없다. 기간제 교사는, 학교 입장에서는 손님과 같은 것이다. 아무리 좋은 손님도, 언젠가는 떠날 사람이다. 나 또한 지금의 학교가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언젠가는 떠날 곳이기에 최대한 정을 주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게 벌써 6년이 됐고, 정은 들만큼 들어버렸다. 떠나려는 결심을 쉽게 내릴 수 없을 만큼.
떠날 준비는 작년부터 시작했다. 코로나 19로 인해 원격 수업이 계속되었고, 업무는 많아졌지만 본래 컴퓨터와 친했던지라 오히려 내 시간은 더 많이 남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학생들이 학교에 없던 그 시간 동안, 비로소 나는 학생들이 아닌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내가 무엇을 잘하는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지. 코로나 19로 인해 매일매일 컴퓨터를 붙잡고 원격수업을 관리하는 동안, 어린 시절의 꿈이었던 컴퓨터 프로그래머의 꿈이 다시 떠올라버렸다. 법정나이 40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이 시점에 진로변경이라니. 그것도 하필 프로그래머라니.
초등학교 때부터 내 꿈은 프로그래머였다. 컴퓨터 학원이 유행처럼 번졌던 시기에, 나는 우리 학원의 문을 제일 먼저 열고 들어오는 학생이었고, 제일 먼저 컴퓨터를 켜는 학생이었다. 검정 화면에 녹색으로 뜨는 글씨가 좋았고, 내가 입력한 프로그램이 원한 대로 결과를 출력해 줄 때 무엇보다 기뻐했던 꼬마 아이였던 시절이 있었다. 아버지가 사다 주신 삼성 그린 컴퓨터를 닳고 닳을 때까지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다 결국 떠나보냈던 중학생이었고, 수학 성적이 좋지 않아 결국 문과로 갈 수밖에 없었던 고등학생이었다. 그 시절의 꿈이 다시 떠올라 버린 것이다.
간단한 원격수업 관리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선생님들께 배포도 해보고, 몇몇 재능판매 사이트에서 내 프로그램을 판매도 해보았다. 하필 그게 또 결과가 좋게 나왔다. 생각보다 나 같은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간단한 프로그램도 원하는 사람이 많았다. 내가 만든 프로그램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고, 내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으며, 프로그램을 판매하여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플랫폼도 있었다.
그럼 이제 남은 것은 하나밖에 없지 않나. 떠나갈 결심이다. 이번 29일이 1차 시험 결과 발표일이다. 그리고 결과는 불합격일 것이다. 땅의 끝은 바다의 시작인 것처럼, 내 한 시절이 끝나면 또 다른 시절이 시작될 것이다. 지금 쓰는 글은, 내 하나의 시절의 종말을 눈앞에 둔 내 두려움의 표현이다. 부디 다음 글의 내용이 긍정적이기를. 그래서 내 글을 읽을 누군가에게 새로운 길을 갈 용기를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