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숲오 eSOOPo Sep 01. 2022

나의 초능력들 40

뒷모습 : 결코 속일 수 없는 풍경

진심은 뒤통수에 아로새겨져 있


한때는 눈을 들여다보면 마음이 보이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눈은 마음의 창이 아니다. 컬러렌즈로 선글라스로 혹은 약간의 연기력으로 온전한 자신의 눈빛을 왜곡시켜 속일 수 있다. 그러나 뒷모습마저 위장할 수는 없다. 마치 마트에 진열된 상품들이 제 각각의 정보를 고스란히 담은 바코드를 뒤편에 두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오래전에는 인간도 자연의 일부였던 적이 있다. 앞뒤가 없는 자연과 같이 온통 앞모습이자 동시에 뒷모습이었고 모든 방향에서도 마음을 들여다볼 눈들을 지니고 있었다. 상대를 읽어내는데 지금처럼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낮았다. 점차 우리는 교묘해지고 영악해지면서 마음을 단속하기 시작했다. 온전히 나만 열람할 수 있도록 패스워드로 굳게 봉쇄했다. 그것은 앞모습의 개인화, 아니 사유화의 성공으로 보인다. 이런! 인간의 어리석음이여! 역시 제 눈에 보이는 부분만 보는 한계 탓에 뒷모습 챙기기를 놓치고 말았다. 고스란히 타자의 시선에 노출된 채 거리를 활보한다. 잘 치장된 혹 위장된 얼굴로 세상과 습자지처럼 공허하고 얇은 교감을 광속도로 광범위하게 하고 있다. 자신의 뒷모습을 흘리면서.


상대를 잘 모르겠을 때는 그의 뒷모습을 응시한다. 얼굴의 표정은 의도적일 수 있지만 뒷모습을 의도할 수는 없다. 헤어진 후 등 돌리고 돌아서 가는 뒷모습은 어떠한 말로 하는 사연보다 솔직하고 어떠한 변명보다 사실적이다. 그것을 외면할 수 없다. 그는 뒤통수로 울고 있으며 발자국마다 눈물로 질척거린다. 달려가 그의 걸음을 멈추게 하고 돌려세워 안아주고 싶어 진다. 차라리 그의 뒷모습을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이미 늦었다.


나의 초라한 능력은 상대를 좀 더 알고 싶을 때 애써 그의 뒷모습을 보는 것이다. 멈춘 뒷모습을 보기도 하고 움직이는 뒷모습을 보기도 한다. 뒷모습에서 그를 온전히 느낀 후라면 그를 결코 미워할 수가 없다. 언어에서 즐비한 오해 따위는 더 이상 없다. 그렇다면 나의 뒷모습은 안전할까. 어떻게 단장해야 하는가. 내가 보이는 얼굴을 화장하는 것과 달리 남에게만 보이는 나의 뒷모습을 그나마 나아지게 하는 건 마음과 행실 다루기 밖에 별도리가 없어 보인다. 모르긴 몰라도 옳게 생각하고 아름답게 행하는 것 이외에 딱히 요령 없는 건 맞다.

이전 19화 나의 초능력들 39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