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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Dec 06. 2024

글을 겪는 일

0908

글을 쓰는 일은  멀리서 심연을 바라보는 것보다 깊은 바다로 직접 내 몸을 던져 들어가는 것이다


수압을 이겨내야 하고

호흡을 다루어야 하고

체력을 파악해야 하고

흐름에 적응해야 하고

리듬을 적용해야 하고

한계를 읽어내야 하고

위치를 설정해야 하고

방향을 붙잡아야 하고

수없이 헤엄쳐야 한다


나는 부레가 없으므로

나는 아가미가 없으므로

나는 지느러미가 없으므로

고통과 환희를 번갈아 맛보며 빛을 향해 나아간다


하나의 장애물을 넘고나면 수초 사이에 문장 하나가 숨겨져 있다

하나의 무서운 물고기와 사투를 벌이고 나면 주옥같은 문장 하나를 얻을 수 있다

만의 하나 용왕이라도 만나는 날에는 100일치 문장다발을 몸에 칭칭 감고 만선이 된다


어푸 어푸


때로는 숨이 모자라 물장구만 치다가 돌아오기도 한다


온몸은 물벼락을 맞은 두더쥐가 되어 뭍으로 나온다 부끄럽고 속이 상해 펜으로 허벅지를 찌른다 고래등의 물줄기처럼 자책이 솟는다


잠시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보니 천변에 목이 길고 털이 하얀 새들이 무리지어 이동한다


겨울인데도 이곳을 떠나지 않는 것은 저곳의 기온과 별반 차이가 없어서일까


몸 자체가 달력이고 나침반인 동물들이 부럽다


나는 새처럼 날수도 없고 물고기처럼 헤엄칠 수 없어서 글을 쓴다


늘 약점이 동기가 되고 자극이 된다


글쓰기는 인간의 한계가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다


이 차를 마시고 나면 다시 심연으로 날 던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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