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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Dec 08. 2024

눈은 곡이다

0910

맑고 드높다


어제의 솜뭉치같은 구름들은 어디론가 거둬갔다


너무 푸르른 하늘이 괜히 슬프다


목숨을 걸고 사는 사람들이 숭고해 보인다


그 무엇도 노리는 것은 놀이가 될 수 없다


누군가 쓰다 만 볼펜이 탁자 위에 비스듬히 누워있다 잉크가 마를까봐 펜 끝을 눌러 숨긴다


기운이 흉흉할 때마다 기시감이 든다


다음 장면은 예측한 것과 맞아 떨어진다


누구나 알게 모르게 두 번씩 사는구나


알면서 사는 것을 일상이라고 하고

모르게 사는 것을 운명이라고 하나


그렇다면 죽음도 두 번이 보장되겠다


하나만 죽은 상태는 무엇이라고 부르면 좋을까



밝고 드세다


삶은 이토록 눈부시도록 밝으면서 모질고 드셀까


눈을 뜨고 있기엔 숨가쁘고

눈을 감고 있기엔 애가탄다


그래서 인간은 눈을 깜빡인다 끊임없이 수도 없이


잔상때문에 연속인 것으로 인식하지만 우리는 커트 커트로 세상을 본다 게다가 거꾸로 망막에 맺힌다


눈은 너와 나 사이에서 곡이다


똑바로 보는 것이 두려워  차마 눈을 감다가

미처 못 보는 것이 궁금해 이내 눈을 뜨다가


양쪽 눈은 각자 자유로운데 깜빡일 때는 동일하다


눈의 깜빡임으로 책을 쓴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눈의 빛으로 언어를 대신할 수 있다


만해가 노래한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는 눈이 부르는 노래다


곡소리는 결국 눈으로 이어진다


이런 날에는 누구의 눈이라도 바라보면 눈물이 난다

https://brunch.co.kr/@voice4u/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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