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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Dec 17. 2024

공회전 독서

0919

흘러가고 사라진다


음악처럼 흩어진다


짐노페디가 느리게 느리게 연주된다


선율은 구조물이 되어 사색의 공간을 짓는다


투명하고 한없이 가벼운 그곳으로 몸을 옮긴다


그립다가 그리워하다가 그립다가 그립다가

그립다가 그리워하다가 졸립다가 그립다가


파도가 지워버린 무수한 연인들의 발자국을 떠올리다가 헤아리다가 파도에 떠내려가는


순간을 파도의 밀물과 썰물의 간극으로 느리게 느리게 감지한다


그래서 불쑥불쑥 내면이 서늘하고 막막했구나



스토리를 놓친 책을 4권째 읽고 있다 주인공이 여기에 왜 있는지 지금 마주한 인물과 어떤 관계인지 모르는 채로 읽는데 나쁘지 않다


줄거리를 알고자 했다면 책소개글을 보면 친절하다


원래 몰랐던 이야기니까 몰라도 슬프지 않다


문장 사이를 배회하다가 만나는 이미지는 이야기보다 강렬하다


매거진이 청바지가 아니듯이 책은 이야기가 다가 아니다 고깃집에 가서 곰탕으로 배채워도 족하다


다 알아야 한다는 고집만 내려놓으면 얻는 게 많다


가벼운 산책이 거창한 짐을 꾸려 떠난 여행보다 괜찮았던 적이 있었으니 뜻하는 게 장애물이 된다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다 죄다 쥐지 못하기도 한다


나는 매일 공회전 책읽기를 즐긴다


신기하게도 시간이 소비되지 않고 들러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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