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좋은 날들은 흘러가는 것 잃어버린 주홍 머리핀처럼 물러서는 저녁 바다처럼, 좋은 날들은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처럼 새나가지 덧없다는 말처럼 덧없이, 속절없다는 말처럼이나 속절없이. 수염은 희끗해지고 짓궂은 시간은 눈가에 내려앉아 잡아당기지. 어느덧 모든 유리창엔 먼지가 앉지 흐릿해지지. 어디서 끈을 놓친 것일까. 아무도 우리를 맞당겨주지 않지 어느날부터. 누구도 빛나는 눈으로 바라봐주지 않지.
눈멀고 귀먹은 시간이 곧 오리니 겨울 숲처럼 더는 아무것도 애닯지 않은 시간이 다가오리니
잘 가렴 눈물겨운 날들아.
작은 우산 속 어깨를 겯고 꽃장화 탕탕 물장난 치며
슬픔 없는 나라로 너희는 가서
철모르는 오누인 듯 살아가거라.
아무도 모르게 살아가거라.
길을 걷다가 멈추어 나의 빛나던 순간들을 생각해
가장 눈부신 시절은 가장 눈물겨운 시간이었음을
기억은 고통이 두려워 자꾸 뒤집어 기억하곤 하지
가장 힘겨운 시간을 가장 아름다웠노라고 그렇다고
분명 그랬노라고 그러고 싶다고 아니면 안.된.다.고
시간은 물의 물성을 닮아서 흐르지 쏟아내지 흩어지지 증발되지 마르다가 넘쳐 범람하는데
둑을 세우려면 시간을 잠시 가두어 담아둬야는데 그 그릇이 없어서 그 바가지가 없어서 엄두가 안 나
시간은 저질러질 수밖에 없지
거기에 얼핏 비친 내 모습을 겨우 발견하고 그때의 내 마음을 아로새기고 추억의 팻말을 박는 시늉을 하고는 아무도 모르게 구덩이를 파고 묻어버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