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한밤중의 카스테라
여기저기 그을린 프라이팬에, 우유와 계란과 밀가루가 섞인 반죽물이 닿자 ‘지직’하는 소리가 났다. 사각 프라이팬의 뚜껑을 덮고 나면 그 틈으로 김이 솔솔 빠져 나왔다. 아직 멀었나 궁금해하며 나는 몇 번씩 부엌에 가서 엄마 얼굴을 살폈다. 그러면 엄마는 가스렌지 불을 껐고, 도마에 프라이팬을 엎어 카스테라를 꺼냈다. 그리고 달달한 김이 피어 오르는 카스테라를 커다란 식칼을 들고 네모꼴로 잘랐다.
국민학교 시절의 동생과 나에게 엄마가 자주 만들어주던 간식은 카스테라였다. 우리는 카스테라라고 불렀지만, 지금의 카스테라와는 달랐다. 커다란 구멍이 숭숭 뚫려있기도 했고 퍼석퍼석한 느낌이어서 오히려 계란빵이나 술빵에 가까운 식감이었다. 하지만 맛 만큼은 정확히 카스테라 특유의 계란과 우유의 조합, 누구나 실패없이 떠올릴 수 있는 그 맛이었다. 간혹 엄마가 불을 끄는 시간을 놓쳤을 때에는 아랫면이 갈색으로 타 버렸는데, 그걸 뜯어내고 먹는 것도 재미있었다.
우리 집은 아파트 5층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1층 계단을 밟으면 벌써부터 고소하고 달달한 냄새가 풍겨왔다. 따뜻하고 포근한 향기였다. 5층까지 계단을 오르면서 금방 구운 카스테라를 먹을 생각에 신이 났다. 평소에는 3층 쯤 올라간 다음 계단에 앉아 딴짓을 하곤 했지만, 그 냄새가 날 때는 뛰어 올라가 헉헉대며 초인종을 눌렀다. 서울이라 할지라도 제과점에 가려면 어른 걸음으로 30분은 가야했던 시절이었고, 금방 구운 빵을 먹는다는 건 사치에 가까웠다.
어느 날 한밤중에 자다가 깨었는데 부엌에 불이 켜져 있었다. 졸린 눈을 비비면서 일어나 보니 엄마가 카스테라를 만들고 있었다. “왜 밤인데 카스테라 만들어?”라고 물었지만 대답이 없었다. 계란을 깨고 반죽물을 만들고 프라이팬을 달구고 반죽물을 붓고 익기를 기다리기까지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완성된 카스테라를 사각으로 자르더니 법랑 남비에 넣었다. “엄마 잠깐 파출소에 갔다올게. 자고 있어, 응?” 집에서 입던 원피스에 스웨터만 대충 걸치고 엄마는 카스테라와 함께 나가버렸다.
다시 설핏 잠들었던 나는 수런거리는 말소리에 잠이 깼다. 술을 많이 마신 아빠가 엄마와 말다툼하는 소리가 문틈으로 들려왔다. 엄마는 파출소에 잘 다녀왔을까, 아빠는 왜 저렇게 술을 마셨을까, 카스테라는 어디로 갔을까 이리저리 생각을 하다 보니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 방문이 열렸고, 엄마가 들어왔다. “얘들아, 자니?” 우리가 대답을 하지 않자, 엄마는 가지고 온 베개를 놓고 우리 옆에서 잠을 청했다. 나는 자는 척을 했지만 엄마의 숨소리를 들으면서 깨어있었고, 혹시라도 뒤척이면 엄마가 알아챌까봐 가위 눌린 것처럼 똑바로 누운 채 가만히 있었다. 그 한밤중의 시간은 참 느리게 흘렀다.
엄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아빠와 결혼했다. 얘기를 들어보면 분명 연애 결혼이었지만, 5남매 중 귀염받는 첫째딸이었던 그녀가 3대 독자 동갑내기와 결혼해 홀시어머니를 모시는 삶은 분명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먼저 태어난 아들 둘은 아기적에 일찍 세상을 떠났고 그 이후 태어난 건 연년생 딸 둘이었다. 20대 초중반, 아직 서투르고 미숙하고 세상을 처음 알아갔을 그 나이의 엄마에 대해 가끔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 나이 때의 나를 떠올려본다. 동아리 친구들과 술을 먹느라 지하철 막차를 밥먹듯이 타고 다녔고, 앞으로 남은 미래가 넓게 열려 있다고 생각하며 행복해했던 대학생 시절의 나 말이다. 하지만 20대의 엄마의 삶은 무거웠다. 술을 좋아해 매일 늦는 남편 때문에 속을 끓이고 초등학교 연년생 두 딸을 보살피면서 새로 입주해 대출금을 값을 일이 막막한 아파트에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다.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카스테라를 구웠을까.
그 카스테라를 만들고 싶어져서, 엄마한테 요리법을 물어봤던 적이 있다. 하지만 엄마는 프라이팬이 아니라 오븐으로 만들었고, 내 기억 속 식용유가 아닌 버터를 사용했다고 해서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왜 레시피를 기억 못해?”라며 내가 타박하자 “그게 벌써 30년도 더 전의 일이잖아. 어떻게 기억이 나니?”하며 엄마는 살짝 웃었다. 생각해보니 굉장히 오래전 얘기고, 엄마는 칠순을 앞두고 있다.
남들은 맛있는 것을 먹거나 좋은 것을 볼때 자기 아이가 생각난다는데, 나는 엄마가 떠오른다. 나와 같은 나이였을 때 엄마가 짊어졌던 짐들을 생각해보면, 뭐든 좋은 걸 발견하면 엄마와 나누고 싶어진다. 외국에서 신기한 케잌을 봤을 때, 해외 쇼핑몰에서 좋은 차를 직구할 때, 백화점에서 맛나고 비싼 치즈 같은 걸 보면 엄마가 떠올라 하나씩 더 사다가 집에 갈 때 엄마한테도 맛보라고 하지만, 어느날 다시 가보면 유통기간이 지나 있어 버려지기 일쑤다. 그때마다 엄마한테 신경질을 내지만, 그래도 다시 뭔가 좋은 걸 보면 엄마 것까지 하나 더 사게 된다.
그건 그렇고, 갑자기 궁금해져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왜 아빠가 그 밤에 파출소에 있던 것인지? “네 아빠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걸핏하면 통금에 걸렸어. 그때는 통금이면 밖에 못 돌아다녔거든. 파출소가 우리 집에서 가깝기도 해서 그럴 때마다 카스테라나 도넛을 구워서 경찰 아저씨께도 드렸지. 아휴, 말도 마. 네 아빠가 비틀거려서 경비 아저씨랑 둘이 아빠를 부축하고 5층까지 올라갔던 생각하면...”
엄마는 한편으로는 웃으면서, 한편으로는 한탄하면서 얘기했다. 전화기 너머로 아빠가 궁시렁대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나는 전화를 끊으면서, 옛일을 들춰내서 아빠랑 또 투닥투닥 말다툼할 텐데 괜히 물어봤나 싶어 살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