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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o 준우 Sep 17. 2024

인턴의 하루와 단수이의 노을

인턴십 적응기

사람은 누구나 타고난 기질이 있지 않나. 떨림과는 별개로 나는 주목받는 상황을 마다하지 않았다. 대강의실 문을 열자 스포츠 매니지먼트 학과 학생들이 빼곡히 자리를 채우고 있었고, 맨 앞줄에는 인턴십 동료인 외국인 친구들이 앉아 있었다. 학과장님은 마침 대만 마라톤 협회 회장이셨는데, 학교 관련 여러 공지사항을 전한 뒤 새로 온 나를 소개한다고 하시며 앞으로 나오라는 손짓을 했다.

무대 체질

심장은 터질 듯 쿵쾅거렸지만, 대만 학생들은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배운 중국어를 총동원해 자기소개를 하고,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는 영어로 대만에 온 이유, 현재 하고 있는 일, 인턴십 목표를 설명하며 신고식을 무사히 마쳤다. 이것이 내 기억으로는 대학교 과제를 제외하고 처음으로 청중 앞에서 발표한 경험이었다.


대만 캠퍼스 생활은 꽤 즐거웠다. 나도 대학생이었기에 또래 친구들과 기숙사 생활을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밥도 먹으며 금세 친해졌다. 다른 문화에서 자란 친구들의 새로운 시각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넓어졌다.


특히 처음 며칠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대만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스포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였다. 새벽 공원에서 단체 체조나 러닝을 즐기는 어르신들은 물론, 대학생들도 수업이 끝난 후 음주나 여흥보다는 캠퍼스에서 배구나 농구를 하며 활기찬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한창 꾸미기 좋아할 나이인 여학생들이 화장기 없는 얼굴에 편안한 운동복 차림으로 남학생들과 어울려 스포츠를 즐기는 모습은 나에게는 신선한 모습이었다.


스포츠 매니지먼트 학과 인턴 업무도 꽤 특별했다. 자잘한 심부름은 제외하고 주요 업무만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스포츠 매니지먼트 학과 강의
주변 초, 중, 고등학교 파견 강의
학교 스포츠 클럽 운영
지역 스포츠 이벤트 기획, 홍보 및 운영
대만 중학교와 초등학교의 교실 차이 강의 중인 찰리

스포츠 매니지먼트 학과 강의는 강의라기보다는 내가 에이전시에서 경험한 일들과 다른 나라의 스포츠 시장 상황을 공유하며, 국내외 스포츠 산업의 차이를 탐구하는 자리였다.


초·중·고등학교 파견 강의는 스포츠를 주제로 한 영어 강의가 주였고, 캐나다와 한국의 유명 프로 스포츠를 소개한 후 학생들이 각자의 관심 스포츠나 궁금한 점을 질문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열심히 축구를 가르치고 있는 알렉스

학교에서 운영하는 ‘산도밍고’ 스포츠 클럽은 대학교 학생들이 지역 유소년들에게 스포츠 수업을 제공하는 시스템이었다. 인턴들은 현장에 파견되어 각자 자신 있는 스포츠인 축구, 농구, 야구 등을 유소년들에게 가르치는 역할을 맡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스포츠 이벤트 기획이었다. 내가 참여했을 당시 골프대회가 막 끝나고 있었고, 우리는 대만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국제 스포츠 캠프를 기획했다. 외국인 인턴들은 기획과 홍보뿐만 아니라 스포츠 클럽 운영과 같이 팀 리더로 아이들을 이끌며, 스포츠 체험과 관광이 결합된 ‘스포츠 투어리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 경험은 이후 내가 한국에서 해외 구단과 함께 기획한 영어 축구 캠프 및 다른 이벤트들을 진행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다수의 영국인들(5명)의 취향을 존중한 피시엔 칩스 회식

아침부터 오후 5시까지 업무를 마치면, 새로 사귄 대만 친구들과 함께 단수이에서 대왕카스테라를 먹으며 노을을 감상하거나, 쉬는 날에는 조던과 함께 피트니스 센터에 가서 운동하며 점차 대만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피트니스 센터는 학교에서 약 2km 떨어져 있어, 자연스럽게 유산소와 무산소 운동을 병행하는 루틴이 형성되었다. 타지 생활 속에서도 운동하러 가는 길에 조던과 함께 걸으며 고민이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내게는 큰 의지가 되었다. 

단수이의 노을

물론 예상치 못한 일도 있었다. 중국어 실력을 키우겠다는 야심 찬 목표와 달리, 새로 배운 단어를 실전에서 연습하려 내가 중국어로 대만 친구들에게 말을 걸면 그들은 영어나 심지어 한국어로 대답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캠퍼스를 찾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나를 현지인으로 착각하고 중국어나 영어로 길을 묻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난 한국어로 친절하게 답하며, 대만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려줘야 했다.


그렇게 누가 봐도 현지인(?)처럼 생활하며 일주일이 지나고, 먼저 와 있던 룸메이트들과는 이별의 순간이 찾아왔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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