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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석 변호사 Feb 23. 2020

동산 양도담보 목적물을 처분한 채무자의 배임죄 성부

1. 최근 전원합의체 판결의 요지


2020년 2월 20일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로 종전의 판례를 변경하여, 동산을 양도담보로 제공한 채무자가 제3자에게 담보에 제공된 동산을 처분한 경우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다음은 그 판결 다수의견의 요지이다.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사무의 주체인 타인에게 손해를 가할 때 성립하는 것이므로 그 범죄의 주체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어 야 한다. 여기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하려면, 타인의 재산관리에 관한 사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타인을 위하여 대행하는 경우와 같이 당사자 관계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이 통상의 계약에서의 이익대립관계를 넘어서 그들 사이의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타인의 재산을 보호 또는 관리하는 데에 있어야 한다. 이익대립관계에 있는 통상의 계약관계에서 채무자의 성실한 급부이행에 의해 상대방이 계약상 권리의 만족 내지 채권의 실현이라는 이익을 얻게 되는 관계에 있다거나, 계약을 이행함에 있어 상대방을 보호하거나 배려할 부수적인 의무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채무자를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할 수 없고, 위임 등과 같이 계약의 전형적.본질적인 급부의 내용이 상대방의 재산상 사무를 일정한 권한을 가지고 맡아 처리하는 경우에 해당하여야 한다.
채무자가 금전채무를 담보하기 위하여 그 소유의 동산을 채권자에게 양도담보로 제공함으로써 채권자인 양도담보권자에 대하여 담보물의 담보가치를 유지.보전할 의무 내지 담보물을 타에 처분하거나 멸실, 훼손하는 등으로 담보권 실행에 지장을 초래 하는 행위를 하지 않을 의무를 부담하게 되었더라도, 이를 들어 채무자가 통상의 계약에서의 이익대립관계를 넘어서 채권자와의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채권자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따라서 채무자를 배임죄의 주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고, 그가 담보물을 제3자에게 처분하는 등으로 담보가치를 감소 또는 상실시켜 채권자의 담보권 실행이나 이를 통한 채권실현에 위험을 초래 하더라도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할 수 없다. 그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는 신분을 요하는 진정신분범이다. 따라서 배임죄의 성립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피고인의 행위가 타인의 신뢰를 위반한 것인지, 그로 인한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를 따지기에 앞서 당사자 관계의 본질을 살펴 그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여야 한다. 채무자가 계약을 위반하여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등 채권자의 기대나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를 하고, 그로 인한 채권자의 재산상 피해가 적지 않아 비난가능성이 높다거나, 채권자의 재산권 보호를 위하여 처벌의 필요성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배임죄의 죄책을 묻는 것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반한다.
2) 금전채권채무 관계에서 채권자가 채무자의 급부이행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금전을 대여하고 채무자의 성실한 급부이행에 의해 채권의 만족이라는 이익을 얻게 된다 하더라도, 채권자가 채무자에 대한 신임을 기초로 그의 재산을 보호 또는 관리하는 임무를 부여하였다고 할 수 없고, 금전채무의 이행은 어디까지나 채무자가 자신의 급부 의무의 이행으로서 행하는 것이므로 이를 두고 채권자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따라서 채무자를 채권자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채무자가 금전채무를 담보하기 위하여 그 소유의 동산을 채권자에게 양도하기로 약정하거나 양도담보로 제공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채무자가 양도담보설정계약에 따라 부담하는 의무, 즉 동산을 담보로 제공할 의무, 담보물의 담보가치를 유지.보전하거나 담보물을 손상, 감소 또는 멸실시키지 않을 소극적 의무, 담보권 실행 시 채권자나 그가 지정하는 자에게 담보물을 현실로 인도할 의무와 같이 채권자의 담보권 실행에 협조할 의무 등은 모두 양도담보설정계약에 따라 부담하게 된 채무자 자신의 급부의무이다. 또한 양도담보설정계약은 피담보채권의 발생을 위한 계약에 종된 계약으로, 피담보채무가 소멸하면 양도담보설정계약상의 권리 의무도 소멸하게 된다. 양도담보설정계약에 따라 채무자가 부담하는 의무는 담보목적의 달성, 즉 채무불이행 시 담보권 실행을 통한 채권의 실현을 위한 것이므로 담보설정계약의 체결이나 담보권 설정 전후를 불문하고 당사자 관계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은 여전히 금전채권의 실현 내지 피담보채무의 변제에 있다. 따라서 채무자가 위와 같은 급부의무를 이행하는 것은 채무자 자신의 사무에 해당할 뿐이고, 채무자가 통상의 계약에서의 이익대립관계를 넘어서 채권자와의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채권자의 사무를 맡아 처리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채무자를 채권자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할 수 없다.
3) 채무자가 그 소유의 동산을 점유개정 방식으로 양도담보로 제공하는 경우 채무자는 그의 직접점유를 통하여 양도담보권자에게 간접점유를 취득하게 하는 것이므로, 채무자가 담보목적물을 점유하는 행위에는 ‘보관자’로서 담보목적물을 점유한다는 측면이 있고, 채무자는 그 과정에서 담보물을 처분하거나 멸실.훼손하는 등의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될 의무를 부담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의무는 점유매개관계가 설정되는 법률 관계에서 직접점유자에게 공통적으로 인정되는 소극적 의무에 불과하다. 이러한 소극적 의무가 있다는 사정만으로는 직접점유자에게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간접점유자의 재산상 이익을 보호.관리할 의무가 있고 그러한 보호.관리의무가 당사자 관계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을 이루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점유매개관계를 설정한 직접점유자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 점유매개관계의 기초가 되는 계약관계 등의 내용을 살펴보아야 하고, 점유매개관계의 기초가 되는 계약관계 등의 내용상 직접점유자의 주된 급부의무 내지 전형적.본질적 급부의무가 타인의 재산상 사무를 일정한 권한을 가지고 맡아 처리하는 것이어야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할 수 있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양도담보설정계약에서 당사자 관계의 전형적.본질적인 내용은 채무자의 채무불이행 시 처분정산의 방식이든 귀속정산의 방식이든 담보권 실행을 통한 금전채권의 실현에 있다. 채무자 등이 채무담보 목적으로 그 소유의 물건을 양도한 경우 반대의 특약이 없는 한 그 물건의 사용수익권은 양도담보설정자에게 있다. 동산을 점유개정 방식으로 양도담보에 제공한 채무자는 양도담보 설정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자신의 권리에 기하여, 그리고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자신의 비용 부담 하에 담보목적물을 계속하여 점유.사용하는 것이지, 채권자인 양도담보권자로부터 재산관리에 관한 임무를 부여받았기 때문이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측면에서도 채무자가 양도담보권자의 재산을 보호.관리하는 사무를 위탁받아 처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위와 같은 법리는, 채무자가 동산에 관하여 양도담보설정계약을 체결하여 이를 채권자에게 양도할 의무가 있음에도 제3자에게 처분한 경우에도 적용되고, 주식에 관 하여 양도담보설정계약을 체결한 채무자가 제3자에게 해당 주식을 처분한 사안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위 판결의 취지를 간단히 말하자면, 배임죄가 되기 위해서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범인이 될 수 있는데 동산의 양도담보계약 자체에 타인의 사무를 처리한다는 내용이 없기 때문에 동산 양도담보를 설정한 채무자나 설정해 주기로 약속한 채무자는 배임죄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의미이다. 계약상 채무 기타 법률관계 자체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경우에 한하여 배임죄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취지이다. 그러한 계약의 전형은 위임이다. 아마도 민법의 전형계약 중 위임형 계약에 속하는 고용, 도급, 임치는 배임죄가 성립하는 법률관계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2. 유사 사례의 정리

* 동산 이중매매에서 횡령죄의 성부는 매도인이 제1매수인에게 물건을 인도한 이후에(소유권이 이전된 후에) 이중 매도한 때에는 횡령죄가 성립할 수 있으나, 인도하기 전에 이중 매도한 때에는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중 처분 사례의 경우, 판례는 부동산에 관하여는 배임죄의 성립을 인정하고 동산에 대해서는 부정함을 알 수 있다. 동산의 이중매매에서 배임죄의 성립을 부정하는 이유는 '타인의 사무 처리자'가 아니라는 점이나, 동산의 이중 양도담보에서 제1양도담보권자에 대한 배임죄의 성립을 부정하는 이유는 점유개정에 의한 선의취득이 부정되는 관계로 제2의 이중 양도담보 계약자는 양도담보권을 취득할 수 없고, 따라서 제1양도담보권자에게 손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며, 제2계약자에 대한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 까닭은 같은 이유로 채무자가 제2계약자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담보물 처분 사례의 경우, 부동산 양도담보권자가 변제기 전에 처분하는 경우만 배임죄를 인정하고 그 외는 부정한다. 횡령죄는 동산 양도담보에서만 문제 되는데, 채권자가 처분한 때에만 횡령죄를 인정한다.

한편, 이중 처분 사례 중 동산 이중매매에서만 횡령죄가 문제 될 수 있고, 다른 경우에는 횡령죄가 문제 되지 않았다.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은 동산 양도담보에서 채무자가 담보물을 처분한 경우의 배임죄 성부를 다루었다. 이번 판결의 취지에 비추어 보면, 부동산 양도담보에서 채권자가 변제기 전에 처분한 경우 배임죄의 성립을 인정한 판례도 향후에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진다. 부동산의 이중 매매나 이중 저당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3. 코멘트


위 표의 사례 중 횡령죄는 별도로 문제되지 않는 경우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종전의 우리 대법원 판례는 양도담보의 경우 소유권의 관계적 귀속을 인정해 대내적으로는 채무자가 소유자이지만, 대외적으로는 채권자가 소유자라는 전제에서 횡령죄의 성립 여부를 판단해 왔는데, 그것은 이미 오래전에 독일 학계에서는 폐기된 이론이기 때문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 별개의견에서는 이러한 관계적 귀속을 판결의 방론(傍論)이라고 강변하지만, 위 80도2097 판결을 보면 동산 양도담보에서 소유권이 채무자에게 유보되어 있음을 근거로 자기 소유 물건이어서 채무자는 횡령죄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분명히 판시하고 있다.


과거에는 교과서에서 신탁적 소유권이전설을 설명할 때 소유권의 관계적 귀속이라고 하는 19세기 초반에 있었던 견해를 기초로 했다. 그러나 이 견해는 앞서 언급한바 이미 오래전에 폐기 되었고, 현재는 위 별개의견이 주장하듯이 대·내외적으로 소유권이 완전히 이전하고 채권자는 채권담보의 목적 이상으로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는 채무를 부담한다는 내용으로 신탁적 양도설이 바뀌었다.


그런데 새로운 신탁적 양도설에 대하여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권에 채권적 부담이 가해진다고 해서 당초의 물권과 다른 새로운 내용의 물권이 탄생할 수 있는지가 의문인 것이다. 물건에 대한 새로운 지배 내용이 아니라, 특정인(채무자)에 대한 채권자의 채무가 더해진다고 하여 대세적 지배관계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상술하지는 않지만 개인적인 견해로는 양도담보권은 가등기담보 등에 관한 법률과 상관없이 담보물권으로 이해함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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