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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석 변호사 Feb 24. 2020

현 상태로 매매한다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인가요?

기본개념 제9강     매도인의 하자담보책임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를 보면 "현 (시설)상태로 매매(임대)한다." 또는 "현 (시설)상태로 이전한다."라는 특약사항을 기재하는 때가 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을 매도인이 잔금일까지 현상태를 유지하고 어떤 변경을 가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생각할 수도 있고, 다른 이는 매매 목적물을 확인했으니 나중에 다른 이의를 하면 안 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으며, 반대로 매도인이 고지 하지 않은 하자는 없는 상태를 현상태로 이해하여 나중에 하자가 발견되면 매도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로 파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법률문서에 이와 같이 의미가 명확하지 않은 문구를 기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쨌든 위 문구의 문언 해석상으로는 매도인이 계약을 체결할 때의 매매 목적물의 상태에 상당한 이유 없이는 어떤 인위적 변경을 가하지 않기로 하는 약정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주택의 매도인이 빌트인 냉장고나 식기세척기를 떼어간다든지 건물의 매도인이 외벽에 새로운 간판을 설치한다든지 토지 매도인이 토지의 형질을 변경하는 등의 행위를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위 문구가 없다고 하여 반드시 앞서 예로 든 행위를 할 수 있다고 해석되는 것은 아니다. 가령 빌트인 가전제품의 경우 종물은 주물의 처분에 따른다는 법리(민법 제100조 제2항)에 따라 주물인 주택과 함께 매수인에게 인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위 문구가 물리적 형상뿐만 아니라 매매 목적물에 관련된 권리관계까지 포함하는지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위 문구로써 통상 매매 목적물의 물리적 시설만을 고려하는 것이 매매 당사자의 의사이다.

무엇보다 위 문구는 매도인의 하자담보책임과 관련하여 일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문제된다.




우리 민법 제570조 내지 제584조에서 매도인의 담보책임을 정하고 있고, 이것이 유상계약에 준용됨은 기본개념 제8강에서 보았다. 담보책임은 크게 권리의 하자와 물건의 하자로 구별할 수 있는데, 위 문구와 관련된 것은 물건의 하자에 관한 제580조이다.


제580조(매도인의 하자담보책임) 제1항 매매의 목적물에 하자가 있는 때에는 제575조 제1항의 규정을 준용한다. 그러나 매수인이 하자가 있는 것을 알았거나 과실로 인하여 이를 알지 못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제2항 전항의 규정은 경매의 경우에 적용하지 아니한다.
제575조 제1항(제한물권있는 경우와 매도인의 담보책임) 제1항 매매의 목적물이 지상권, 지역권, 전세권, 질권 또는 유치권의 목적이 된 경우에 매수인이 이를 알지 못한 때에는 이로 인하여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하여 매수인은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기타의 경우에는 손해배상만을 청구할 수 있다.


매도인의 하자담보책임에 관해서는 학설과 판례가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민법 제580조와 관련 규정의 해석상 특정물 매도인의 하자담보책임이 채무불이행 책임인지, 아니면 매도인이 채무 불이행한 것은 아니고 매수인과의 형평을 위해 특별히 정한 책임인지가 많이 다투어졌다. 이러한 본질론이 하자담보책임의 해석에 필요 없다는 견해도 있으나, 종래에도 본질론에 기초해 하자담보책임을 해석한 것이 아니라 하자담보책임 관련 규정을 해석하다 보니 그 본질이 무엇인지 불분명한 점이 드러났던 것이었다.


하자담보책임은 로마법에서 유래했다. 어떤 사람이 노예를 샀는데, 그 노예에게 매도인도 알지 못하였던 가벼운 정신 질환이 있었던 경우 대금의 감액이나 계약의 해제를 구할 수 있었다. 이때 "매수인이 그 노예를 달라고 해서, "바로 그" 노예를 줬으니, 매도인은 채무를 다 이행했다. 다만 그럴 경우 매수인이 손해보는 부분이 있으니 이익의 조정이 필요하다."라는 입장이 법정책임설이고, 매수인이 지목한 바로 그 노예를 넘겨줬어도, 그 노예에 숨은 하자가 없어야 채무를 이행한 것이고, 하자가 있으면 채무불이행 책임이 있다."는 것이 채무불이행설의 태도이다.


그런데 하자담보책임은 하자 없는 물건을 인도하는 것이 채무의 내용이냐 아니냐의 관점보다는 이미 발생한 하자를 어떻게 처리(보수)할 것인가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도 있다. 매매계약 당시 하자가 있었지만, 매도인이 그 하자를 보수해 넘겨 주는 것을 금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이미 매수인에게 인도된 이후에는 매수인에게 하자담보책임에 관한 권리가 생기므로 매도인이 임의로 하자를 보수해 주겠다고 나설 수는 없다. 즉 이행의 시기를 기준으로 하자 처리(보수)에 대한 권한이 매도인에게서 매수인에게로 이전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 민법이 매도인의 하자 없는 급부 의무를 인정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종국적으로는 하자 없는 급부 또는 그와 동등한 상태의 실현을 목표로 한다. 우리 민법 제580조는 그 전체 과정 중에서 일부인 이행 이후 매수인 하자 처리에 관한 방법을 정한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제580조의 손해배상은 원칙적으로 하자보수비용을 의미하게 된다. 그리고 명문의 규정이 없더라도 매수인의 하자보수청구권을 당연히 인정하게 된다.



현 상태로 이전한다는 말이 하자담보책임의 면제 약정이라고 보기는 대체로 어려울 것이다. 특별한 이유 없이 상대방의 책임을 면제하거나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약정은 엄격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문자 그대로 충실하게 현 상태로 이전하였어도, 나중에 하자가 드러난 때에는 매도인은 하자담보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매도인이 하자담보책임을 면제하거나 제한하려는 의사가 있다면, "현 상태 이전"과 같은 애매모호한 문구가 아니라, "하자담보책임을 면제한다." 내지는 "위 부동산 인도일로부터 1년간 하자담보책임을 진다."와 같이 그 취지가 분명하게 계약서에 기재되도록 하여야 한다.

법률문서는 그 의미가 명확하게 작성하여야 한다.


One Point 법률용어

종물 : 물건의 소유자가 그 물건의 계속적 경제적 효용에 이바지하게 하기 위하여 자기소유인 다른 물건을 이에 부속시킨 때 그 부속물(민법 제100조 제1항 참조). 종물이 이바지하는 경제적 효용이 귀속되는 물건은 주물이 된다. 종물이 주물의 처분에 따른다는 것은 로마법 이래로 인정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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