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는 커피의 세계, 멈추지 않는 디자이너
디자이너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보았을 것이라는 벤다이어그램이 있다. 이 벤다이어그램을 처음 만드신분은 정말 천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정도이다. 바로 영원히 고통받는 디자이너의 벤다이어그램!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그렇게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 속에 살아간다. 트렌드도 놓치지 말아야 하고, 디자인의 모든 요소를 이해해야 하며, 때로는 기획부터 브랜딩, 심지어 마케팅까지 혼자 감당하면서도 빠르게, 퀄리티는 당연히 높은것을 요구 받을 때가 많다. 요즘 채용공고를 보다보면 3D와 모션그래픽까지 원하는 곳도 많아서 깜짝 놀랄때도 많다.
그러다 보니 항상 최선을 다해도 '이렇게 하는 게 맞나?' 하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고, 계속 쫒기며 채찍질 당하는 느낌에 버겁다는 느낌을 종종 받고는 했었다. 이렇게 일이 잘 안되어서 현타가 올때 마다 항상 그 일을 완수하게 해주는 나만의 방법이 있는데, 그 자리에서 박차고 나오는 것이다. 작업공간에 환기를 주어 한 가지의 고민안에 매몰되지 않는 방법인데, 이번엔 그 해결책으로 방콕의 중심에 위치한 롤링 로스터스를 찾았다.
LOCATION 288 Prannok-Phutthamonthon Road, Bang Phrom, Taling Chan, Bangkok 10170
OPERATION HOURS Monday - Friday | 07:00 to 17:30 Weekend | 08:00 to 17:30
'World Rolls, We Roll' 우리는 롤링 로스터스, 멈추지 않는 커피의 세계입니다.
롤링 로스터스는 3,200제곱미터 규모의 로스팅 공장을 갖춘 커피숍으로, 'World Rolls, We Roll'이라는 컨셉 하에 탄생했다고 하여, 멈추지 않는 지구의 회전처럼, 롤링 로스터스의 커피 세계도 맛, 추출, 새로운 커피 경험을 위해 끊임없이 발전해 나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또한 고객과 바리스타 간의 커피 교류가 이루어지는 허브 역할을 목표로 하고 있기도 하다. 매장의 독특한 인테리어는 과거, 현재, 미래를 상징하는 세 개의 지구본으로 구성되어 있어, 외관에는 미래 지향적인 이미지를 나타내는 지구본이 포인트로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미래적인 인테리어로 구성된 라운드테이블을 포인트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2층으로 되어있는데 진입하는 계단 조차도 그냥 평범하게 디자인 되어있지는 않았다. 구리색과 따듯한 웜베이지를 포인트 색으로 사용하였고, 그 재질은 차갑지만 그 전체적인 분위기는 매우 따듯했다.
로스터스답게 직접 다양한 원산지의 원두들도 팔고 있었는데, 바리스타 분들이 커피를 만드는 것을 봤을 때, 정말 그 자부심이 대단하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정도의 커피 경험을 제공하는 거라면 세계 각지의 커피 러버들이 방문하지 않을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직업병이라는 것이 이런 곳에서도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하는데, 매장 인테리어부터 커피에 대한 설명까지 브랜딩이 너무나 단단하게 잘 되어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커피를 내주는 트레이마저 과거, 현재, 미래를 상징하는 3개의 지구본으로 구성해 철학을 살짝 엿보게 한 점도 신선했다.
작업은 2층에서 했었는데 2층을 올라오는 계단이나 지구본으로 된 창문까지 어떤 것 하나 브랜드를 보여주지 않는 곳이 없었다. 이렇게 오차없이 인테리어된 미래적인 공간에서 바라보는 창밖의 푸른 나무들은 이상한 기분마저 들게했다. 우주선에 들어와서 밖을 쳐다보는 그 기분이랄까.
회의가 끝나고 바로 나오느라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살몬 베네딕트 하나를 주문했다. 이곳의 추천 메뉴라길래 먹어봤는데, 다음에 또 방문하게 되면 꼭 다시 먹고 싶다. 웃기게도, 오늘 아침에 머리를 쥐어뜯던 고민이 여기서 일하면서는 서서히 풀리기 시작하더니 결국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역시 고민은 꽉 붙들고 있을 게 못 된다. 내 고민도 새로운 공간을 구경시키고, 새로운 철학을 경험하게 해주다 보면 조금씩 양보해주는 느낌이다.
방콕의 롤링 로스터스는 커피의 맛을 더 깊이 있게 만들기 위해, 전 세계의 다양한 원두를 가져와 그 차이와 개성을 존중하며 최상의 맛을 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자부심 있게 원두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은, 매일 새로운 디자인과 씨름하는 나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디자이너도 커피처럼 다양한 시도와 조합을 통해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완벽함을 추구하기보다는, 무엇이든 시도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한 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불가능한 목표에 매달려 매일 힘들게 살아가다 번아웃 되기보다는, 쉬어가며 시도하고 발전하는 게 더 내 목표에 맞다는 걸 깨달았다. 이 발전을 위한 고통이 멈추지 않는다면, 나는 이제 영원히 고통받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영원히 도전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노트북을 닫고,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생각했다.
당신도 머리가 복잡하다면,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노트북을 닫고 자신만의 영감을 찾으러 새로운 장소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꼭 영감을 찾지 않더라도 머릿속의 먹구름을 바꾸러 숨쉬러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