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시멘트 벽 너머, 오키나와의 진짜 얼굴
우리는 여행을 가서 그 나라의 문화를 얼마나 알고 오는 걸까
최근 오키나와에서 한 달정도 근무를 했다. 리모트 근무로 근무지가 별로 상관이 없기도 하고, 오키나와는 우리나와 타임 존이 같아서 미팅 시간에도 혼동이 없어서 너무 좋은 선택 이었다고 생각한다.
근무를 하지 않는 주말이 되면 혼자 자유여행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패키지나 원데이 투어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키나와는 차가 없으면 이동이 정말 어려운 구조라서 나같은 뚜벅이는 북부투어를 신청했다. 가는 곳 들은 관광객이라면 대부분 가는 곳이라 인스타 사진 많이 찍어와야지라고 생각하며 특별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웬걸 가이드 분께서 앞에 종이 지도를 테이프로 붙여서 거시더니 (이 부분도 진짜 일본스럽다고 생각했다.) 오키나와의 역사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기 시작했다.
하이사이! 우리는 오키나와인입니다.
오키나와 인들이 왜 오키나와진이라고 일본인과 구분되어 불리는지는 류쿠왕조로 거슬로 올라간다. 류쿠왕조는 일본과는 독립된 왕국이었다. 15세기부터 19세기 까지 독자적인 문화와 정치체제가 있었다. 오키나와는 류큐 왕국 시절부터 중국, 동남아시아 등과의 교류를 통해 다양한 외래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서 언어, 음악, 춤, 전통 의상, 요리 등 여러 면에서 일본 본토와 다른 문화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여행을 다니보면 상점이나 면세점의 기념품에 '멘소레', '하이사이' 같은 영문이 적힌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일본과는 다른 오키나와어라는 방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LOCATION 3 Chome-1-1 Omoromachi, Naha, Okinawa 900-0006, Japan
OPERATION HOURS Tuseday - Friday | 09:00 to 18:00
Weekend | 08:00 to 20:00 Monday | Closed
이게 감옥이 아니라면 최소 군사시설 이어야 한다.
이렇게 역사에 대해 알고나니 오키나와의 예술인들은 어떤 주제를 이야기 하는지가 궁금 해져서 오키나와 현립 박물관을 방문하고 거기서 업무를 하기로 했다. 나는 그 나라의 상징적인 건축물이나 박물관, 예술문화관 등의 건축에도 관심이 많은데, 어딜가나 이런 건물들의 디자인은 단순한 건축을 넘어 그 나라의 역사적 유산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동시에 환경적인 요소들을 영리하게 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으로 구글로 열심히 찾아 버스를 타고 가서 내리자마자 훅 들어오는 당황스러움이란... 이 거대한 회색의 구멍이 뽕뽕 뚤린 건축물이 정말 감옥이 아니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키나와 현립 박물관 및 미술관은 2007년에 나하에 위치한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면서, 이시모토와 니키 건축사무소가 설계한 건물로 이 건축물의 디자인은 전통적인 오키나와 성곽인 구스쿠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구스쿠는 견고한 석조 구조로 유명한데, 박물관도 이를 닮아 단단하고 각진 형태를 통해 오키나와의 내구성과 강인함을 표현하면서 동시에 부드러운 곡선 요소를 더해 현대적이면서도 미래적인 느낌을 주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차가운 시멘트와 단단한 외관 때문에 감옥처럼 느꼈지만, 이 선택에는 이전에 가이드님이 이야기 해준 것처럼 깊은 의미와 실용성이 담겨 있었다. 오키나와는 섬으로 바다에 둘러쌓여서, 철로 건축물을 지으면 바닷바람 때문에 부식이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철 대신 시멘트를 많이 사용하였고, 이는 주택이나 공공 건물 모두에 해당된다고 하셨다. 박물관 건축 역시 이런 환경적 요인에 적응한 결과물이었다.
오키나와의 작품에는 전쟁의 슬픔이 있다.
아트갤러리에 갔다가 영상작품을 이렇게 오래 앉아서 끝까지 본적은 많이 없었던 것 같다. 오키나와의 작품들바다 그리고 오키나와의 자연을 이야기하지만, 그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전쟁에 대한 아픔이다. 오키나와의 아트 갤러리 영상실에서 전쟁을 아픔을 마주하게 될지는 생각지도 못했다.
오키나와는 세계2차 대전의 태평양 전쟁의 마지막 주요 전투인 오키나와 전투(1945년)으로 징집 뿐만 아니라 민간인들의 희생이 많았던 가슴 아픈 전투이다. 오키나와는 당시 일본제국의 일부 였지만 본토 일본인들과는 다른 문화적, 역사적 정체성을 지닌 독립적인 류큐 왕국의 후손이라는 정체성이 강했다고 한다. 전쟁 중 오키나와 주민들은 일본군과 미군 사이에 끼여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한국 역시 과거에 일본 제국의 지배를 받으며 비슷한 역사적 경험을 겪었기 때문에 전쟁에 대한 작품들을 보면서 슬픔과 동시에 여러가지 많은 감정들이 교차했다.
차가운 시멘트 벽 너머, 오키나와의 진짜 얼굴
갤러리의 전시도 관람하고, 작품에 관한 서적이 가득한 도서관에서 업무하기 위해서 내부로 들어가니 빛이 구멍을 통해 들어와 밝고 따뜻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박물관의 외부의 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밝은 빛은 기후에 맞는 요소이기도 하겠지만, 오키나와 사람들의 개방성과 따뜻함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마치 오키나와 사람들이 겉으로는 거친 환경과 힘든 역사를 겪었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따뜻하고 밝은 정서를 가지고 있는 것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박물관의 철옹성 같은 회색 외벽과 내부의 따뜻한 빛의 대비는, 오키나와 사람들이 겪어온 모든 어려움을 떠올리게 했다. 강한 바닷바람과 전쟁의 상처, 이후 복잡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도 그들은 여전히 밝은 에너지를 잃지 않고 서로를 지탱하며 살아왔다. 박물관을 둘러보는 내내, 오키나와 현립 박물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닌, 이 작은 섬이 겪은 차디찬 고난과 그 속에서 피어난 따뜻한 희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키나와 여행에서 일정이 괜찮다면 오키나와 현립 박물관 및 미술관에서 오키나와 사람들의 진짜 얼굴을 찾아보는 것을 추천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