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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어리 Apr 14. 2022

날림을 날림으로 하지 않아서 난리

눈, 낙엽 벚꽃 말고

‘날림.’ 정성을 들이지 아니하고 대강대강 아무렇게나 하는 일을 뜻한다. 딱히 좋은 뜻은 아니다. 요즘은 ‘차라리 날림으로 했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날림 소리에 아침마다 귀가 괴롭다.


느닷없는 원망의 원인은 송풍기다. 소음에 민감해서 차라리 머리를 늦게 말릴지언정 조용한 드라이기를 쓰는 나로서는 출근 시간마다 회사 현관 앞에 쌓인 꽃잎을 날려대는 기계 소리에 고막이 울려 대서 곤욕스럽다.


대관절 낙엽도 아닌 벚꽃 잎이 떨어졌다고 아침마다 보이는 족족 송풍기로 이리저리 날려대는 까닭을 잘 모르겠다. 성급한 생각으로는 미관상의 이유 말고는 짐작 가는 게 없다.


낙엽을 치워야 하는 이유는 알고 있다. 비에 젖은 낙엽을 잘못 발 디디면 미끄러질 수도 있다. 쌓인 낙엽이 잔뜩 쌓이면 하수구가 막힌다. 벚꽃 잎은 구멍이 막힐 정도로 쌓일 일도 없다. 기껏해야 벚꽃 나무가 두세 그루 정도인 정문 앞이 군항제가 열리는 진해라도 되는가? 회사 앞에 사는 새끼 고양이만큼 발 사이즈가 작지도 않은 사람들이 벚꽃 잎을 밟고 넘어질까 봐 치우는 것 같지도 않다.


위생에 민감한 식품공장이나 섬세한 공정이 필요한 장소라면 이해를 할 텐데. 혹시 꽃잎이 자동차에 들어가면 고장이 날까 봐서? 회사 아래 있는 고객 주차장까지 청소하지는 않으니 그건 아닌 것 같다. 나의 개인적인 불만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을까 봐 이 글을 쓰는 도중에 열심히 인터넷에 ‘떨어지는, 꽃잎, 청소’를 검색해보았다.


책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일지 – 임 계장 이야기>를 소개하는 기사를 발견했다. 경향신문 배문규 기자는 떨어지는 꽃잎이 아파트 경비원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쓰레기’라는 현실을 전했다. 꽃을 봉오리로 있을 때 미리 털어내야 하는 존재로 보는 시각보다 비인간적인 것이 경비원들이 처한 노동환경이라고 쓰여 있었다. 꽃잎이 주차장에 나뒹굴면 집값이 싸 보인다나? 우리 회사가 건물 가격이 저렴하게 보일까 봐 청소를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다.


여전히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누군가 보기 싫으니 치우라고 했으니까 날리는 거겠지. 그나마 빗자루 대신 근로자의 허리 건강을 위해 송풍기를 도입했으니 인간적이라고 해야 하나. 청소해야 하는 대상과 대상이 아닌 것을 나누는 인간의 기준이 과연 인간적인지 좀스러운 의문을 피력해 본다.


떨어진 벚꽃 잎 정도는 자연풍에 날아갈 때까지 놔두고 바라보면 벌써 꽃이 지는 풍경을 바라보는 아쉬움이 덜 할 것 같다. 날림을 날림으로 하지 않아서 아침마다 난리다. 누구라도 알려주면 좋겠다. 혹시 내가 모르는 꽃잎 청소를 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면.


이 정도 꽃잎도 뭔가 쌓이게 놔두면 안 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나의 짧은 지식을 탓해야 한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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