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어헤칠 단추나 버튼 없이 머리 부분만 뚫린 풀오버 셔츠를 그것도 리넨 옷감으로 만들 생각을 한 디자이너는 모른다. 비만인의 사정을. 그는 이 옷에 머리를 욱여넣을 모든 비만 인구를 위해 사죄해야 한다.
평소 체형이 최소 과체중 정도만 되어도 이런 옷은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상품이란 걸 알 것이다. 알면서 그랬다면 더욱 죄질이 나쁘다. 이 옷은 살집이 있는 사람에게는 일종의 테러나 다름없다. 입구는 있고 출구가 없는 포획 틀 같은 옷이다. 어떻게 벗으란 말인가? 머리를 집어넣자마자 양팔이 억압복처럼 구속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네…. 여보세요? 여기 현대시티몰 아울렛 4층 폴햄 매장인데요. 탈의실 안에 억압복을 입은 환자가 있습니다. … 예, 되도록 빨리 와주세요.’라고 전화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덫에 걸린 고라니처럼 순간적으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화들짝 놀랐다.
아까 여자 친구와 매장에 온 어떤 남자가 생각났다. 흰색 로퍼에 복숭아뼈가 보이는 맨다리, 흰색 반바지 위에 하늘색 셔츠를 몸에 적당히 꼭 맞게 두른 채로 계산대 직원에게 가슴을 내밀던 그 남자. “택 제거하면 교환이나 환불 안 되시는데 괜찮으세요?”라는 물음에 플라스틱 끈을 쿨하게 자르고 돌아서던 등. 목덜미 쪽 옷깃에 투명한 ‘M’ 자 라벨지가 반짝이던.
그의 목덜미에 라벨이 붙어있다는 말을 건네지 않은 죗값을 여기서 이렇게 받는 것인가? 양팔을 엑스자로 교차해서 위로 벗다 만 자세로 계산대까지 걸어가서 카드 결제를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일단 찢더라도 택은 제대로 달려있을 테니 계산하면 괜찮지 않을까?
뒤통수에 손가락을 뻗어 까끌까끌한 옷감을 잡아당겼다. 조금씩, 천천히, 침착하게. 어릴 적 KBS 채널에서 틀어주던 ‘긴급구조 119’ 속 극적인 구출 현장이 생각났다. 리넨이 이렇게 유도리가, 아니 융통성이 없는 옷감이었다면 소처럼 둔감하고 눈치 없었던 사람은 나였다. 단축된 지옥에서 겨우 머리를 빼내고 전신 거울을 쳐다보았다. 헝클어진 머리가, 늘어진 러닝셔츠의 메시 원단이 간신히 지탱하는 나의 뱃살이 눈에 들어왔다.
105? 코웃음이 나왔다. 사이즈 110이 아닌 옷은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다. 투 엑스라지 바디의 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한 순간은 105 사이즈 셔츠를 다시 옷걸이에 건 순간도, 2XL 라벨이 붙은 리넨 버튼다운 셔츠를 손에 집은 순간도 아니었다. ‘110’이란 숫자가 인쇄된 3+1개들이 검회색 브리프 언더웨어 팩을 품에 안았을 때 나는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었다.
속옷을 입을 때마다 말려 뒤집어지는 밴드를 볼 때마다 늘어난 뱃살을 실감하며 현실을 부정했다. 뭐 하러 그랬을까? 라지 사이즈 언더웨어 따위 오늘처럼 쓰레기통에 구겨 넣고 코끼리가 입을만한 110 사이즈 브리프에 다리를 집어넣었으면 될 것을. 셔츠 사이즈를 고르느라 그 난리를 겪고 나니 다른 부위에 걸칠 옷은 치수 판단이 너무나도 쉬웠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는 돈가스 덮밥에 냉메밀을 한 그릇 먹은 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당도 30% 블랙 밀크티에 펄을 추가해서 홀짝이고 있다. 110 사이즈 언더웨어에 36 사이즈 슬랙스를 입고. 투 엑스라지 사이즈 버튼다운 리넨 셔츠로 커다란 몸을 감쌌다. 슬림핏 따위 엿이나 먹으라지. 나는 큰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