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나
장래희망이 그냥 나?
학생부 다 채워야
담임의 한 해가 마감된다는 거
뻔히 알면서 협조 안 할래?
잘 모르겠단 말이에요
그걸 지금 어떻게 써요? 그것도 딱 하나를
선생님은 중학생 때 장래희망 결정했어요?
당연히 했지
현모양처
그게 뭔데요?
암튼 그래서 그거 되셨어요?
그거 빼놓고 다 됐다, 왜?
거 봐요, 선생님도 뜻대로 안 됐잖아요
‘그냥 나’가 정답이에요
다 아시면서
됐고, 엄마는 니가 뭐가 되면 좋으시겠대?
‘그냥 너’래요
2 대 0!
교무실에 웃음과 박수가 터집니다
퇴근길에 생각합니다
어디서 배웠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말, 현모양처
무슨 말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써넣은 장래희망이
때대로 어설픈 흉내를 내게 하진 않았나
죄 없이 주눅 들게 않았나
뭐 되려고 애쓰지 않겠다,
언제나 그냥 나로 살겠다,
어쩌면 저렇게 멋있을 수 있나
이제라도 그냥 너로 살아라,
녀석이 지금 나한테 그러는 거 맞지요?
- 최은숙, 지금이 딱이야, 창비 청소년 시집
***
‘그냥 나’라는 말 듣고 있으면 살 것 같다. 배시시 웃음이 난다. 오래전에 읽고 좋아서 간직해만 두고 있었는데, 좋은 건 함께 나눠야지 하는 맘으로 이제야 꺼낸다. 현모양처. 하! 어쩌자고 그런 꿈을 꾸었던 걸까? 그녀도 나도.
‘그거 빼놓고 다 됐다 왜?‘ 이 말에 진심 빵 터지고 만다. 참 좋다. 그냥 나!